매년 겨울, 동해의 밤은 환한 불빛이 가득하다. 울릉도 가로등이 켜지기 때문이다. 옛날 동해안 주민들은 오징어잡이 배의 불빛(集魚燈)을 해학적으로 ‘울릉도 가로등’이라고 불렀다. 마치 술꾼을 부르는 포장마차의 불빛처럼 정겹다. 그런데 이 불빛도 국제유가에 따라 세기가 달라진다. 집어등을 밝히기 위해 디젤발전기를 가동해야하기 때문이다. 한때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상회할 때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출항하지 않는 배들도 많았다. 이렇듯 에너지 문제는 동해안 오징어잡이 어민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국제유가에 상관없이 어민들이 신바람나게 조업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국민소득 증가로 수산물 소비가 늘어나면 된다. 국민소득이 증가하려면 경제가 활성화돼야 하고 산업경쟁력이 강화돼야 한다. 산업경쟁력을 강화하려면 산업의 에너지원인 전력의 공급과 가격을 안정화해야 한다.
지난해 한국전력 통계를 보면 한전의 총 전력구매 중 원자력발전 29.3%, 석탄화력 32.5%, 신재생에너지 8.8%, 액화천연가스(LNG)복합이 28.2%를 차지하고 있다. kWh당 구입단가는 원전이 52.6원, 석탄화력 156.7원, 신재생에너지 200.7원, LNG복합 239.9원이다. 대용량의 전력을 24시간 중단없이 공급할 수 있는 전원은 원전과 석탄화력인데 석탄화력은 탄소중립을 위해 줄여나가야 한다. LNG와 복합은 탄소도 배출하고 가격도 비싸다. 신재생에너지는 탄소배출계수는 낮지만 아직은 비싸고 24시간 중단없는 발전이 불가능하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새 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에서 2030년까지 원전 비중을 30% 이상으로 높여나가는 동시에 신재생에너지의 합리적 조정과 석탄화력 감축을 통해 탄소중립과 산업경쟁력 강화로 나아가겠다고 천명했다. 또 올해 초 수립된 전력수급기본계획도 같은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탄소배출계수가 가장 낮고 저렴한 원전을 확대하고 비싼 타 전원을 합리적으로 조정·감축함으로써 에너지안보와 탄소중립을 실현할 수 있다. 이것은 앞으로의 정책방향이지만 우리나라는 이미 고리1호기가 상업운전을 시작한 1978년부터 40년 넘는 시간 동안 원전의 혜택을 누리며 살아왔다.
그런데 ‘새 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처분에 관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영구처분장은 부지 선정과 착수로부터 건설완료까지 수십 년이 소요된다. 이 과제의 해결을 위해 이번 국회에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 관련 3건의 특별법안이 발의됐는데 국회 임기가 끝나가는 지금까지 여야간 협의가 완료되지 않고 있다. 원전산업은 원전의 연구개발과 설계, 건설과 운영, 해체와 방사성폐기물의 저장, 처분 등 발전시스템과 관련된 고유의 영역뿐 아니라 의학, 과학기술, 산업의 원자력 이용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대단히 넓다. 이 모든 것이 방폐장이 마련되지 않으면 안정화될 수 없다. 다행히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은 노무현 정부에서 관련 특별법의 제정으로 중저준위방폐장을 건설해 현재 운영하고 있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의 경우 특별법을 최대한 빨리 제정해 고준위영구처분장 부지부터 선정해야 한다.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국회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로 국정전반을 치우침 없이 살피고 산업발전에 필요한 법을 제정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이러한 국민에 대한 책임보다 더 중요한 당론은 있을 수 없다. 법 제정의 취지와 관계없는 조항을 끼워넣거나 방해법안을 내세워서 필요한 법안의 제정을 막아서는 안된다. 국회의 의무를 더 이상 미루지 말고 법안이 발의된 이번 국회에서 마무리 짓기를 강력히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