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채권시장의 키워드는 단연 ‘고금리 장기화’다. 연초부터 채권금리는 경기 침체 가능성과 인플레이션 둔화, 이에 따른 조기 금리 인하 가능성을 선반영하며 과도한 하락세를 보였다. 3월 초 미국에서 발생한 지역은행 파산으로 일각에서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당장 긴축을 멈출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다만 재무부와 연준의 발 빠른 미시적 대응과 지원으로 위기는 큰 문제 없이 수습됐다.
이후 미국 경제가 견조한 성장세를 이어갔고 3분기부터 국제유가도 상승세로 전환했다. 여기에 인플레이션 반등 우려 속 미국 재정적자 누적으로 인한 차입 증가로 금리가 반등하기 시작했다. 연준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의 긴축 사이클이 예상보다 길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으며 4분기 초 글로벌 금리는 지난해 고점을 웃돌았다. 특히 미국 채권시장은 대내외적인 수요 약화 속 국가 신용등급 하락, 장기국채 발행 증가 등을 소화하며 큰 폭의 약세를 보였다.
연말까지 주요국의 통화 정책회의 일정은 한 차례 정도씩 남아있다. 현재까지는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사이클이 마무리되고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추가 긴축은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낮으며 내년에는 본격적으로 고금리 유지 기간과 장기금리 방향성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연준은 최근 장기금리 상승의 긴축 효과를 인정했다. 따라서 높은 금리 수준이 유지될수록 추가 긴축 필요성은 낮아질 것이다.
미국의 고용시장이 점차 초과 수요에서 균형점으로 이동하고 근원물가도 둔화세가 양호하다. 국제유가는 중동 정세 불안에도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어 안정적인 흐름이 예상된다. 유럽은 상대적으로 경기가 좋지 않고 호주를 마지막으로 영연방 국가도 금리 인상 사이클이 사실상 마무리됐다. 중앙은행이 일정 수준 금리 인하를 고려하기 위해선 추세를 밑도는 성장세와 인플레이션이 목표 수준을 향해 가고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이 때 인플레이션은 명목과 근원 모두 안정적인 경로를 보여야 한다. 현재로서는 내년 상반기 금리 인하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특히 연준은 1970~80년대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적정 수준보다 보수적인 고금리 기조를 고수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행 입장에서는 한미금리차 확대에 따른 부담 속에 선제적인 금리 인하를 선택하기 어려울 것이다. 가계부채 증가와 부동산 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도 통화정책의 제약 요인이다. 장기금리는 미국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두 개의 전쟁 지원 중 재정적자 누적과 국채 발행 증가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기에 계단식의 제한적인 하락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여러모로 정책금리와 시장금리 측면에서 모두 저금리로의 회귀를 기대하기 어려운 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