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워진 추위만큼이나 우리 경제에 싸늘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식당·미용실 등 자영업계에는 매출이 반 토막 났다는 곳이 수두룩하다. 저마다 생활이 힘들다 보니 허리띠를 졸라매고 씀씀이를 줄이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의 사정도 예사롭지 않다. 대법원에 따르면 올해 1~10월 파산을 신청한 법인이 1363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 817건보다 66.8%나 급증했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아 최근 10년 중 파산 법인 수가 가장 많았던 2021년(1069건)의 연간 규모를 넘어섰다.
한국 기업의 부채 규모는 이미 세계 최악 수준이다. 국제금융협회(IIF)의 최근 ‘세계 부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非)금융 기업의 올해 3분기 부채 비율은 126.1%에 이른다. 조사 대상인 34개국 중 홍콩(267.9%), 중국(166.9%)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이미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시작됐던 1997년의 108.6%를 뛰어넘었다. 한국의 부채 규모는 IIF가 집계를 시작한 1995년 이후 가장 높다. 번 돈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이자 보상 비율 1 미만 기업은 지난해 국내 비금융 기업 가운데 무려 42.3%를 차지했다. 한국은행이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9년 이후 역대 최고치다.
팬데믹 이후 빚어진 글로벌 공급 차질에다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치면서 원자재 등 글로벌 물가가 폭등했고 이를 잡으려고 각국의 통화 당국이 고금리 정책을 쓴 영향이 크다. 경기는 꺾였는데 원료 구입 비용은 늘어나고 이자 부담도 가중되니 부실기업이 속출했다. 혁신을 소홀히 하다가 수요자들로부터 외면당한 기업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부실기업을 방치할 경우 경제 회생에 걸림돌이 된다는 점이다. 빚이 많은 기업은 경기회복기에도 과감히 투자를 늘릴 수 없다. 시중 자금이 부실기업에 묶여 있는 만큼 혁신 기업의 성장도 일자리 확대도 기대할 수 없다. 유한한 자금이 혁신이 일어나는 곳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부실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 극심한 고통을 겪었던 IMF 위기를 3년 만에 조기에 졸업한 것도 신속한 구조조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여야가 10월 15일 일몰됐던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을 2026년까지 3년 연장하는 데 뒤늦게 합의해 28일 국회 정무위원회 제1소위원회에서 개정안을 의결했다. 산적한 부실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의 불씨를 살렸다는 점에서 참 다행이다. 기촉법은 기업 재무구조 개선 작업(워크아웃)의 근거가 되는 법으로 외환위기를 계기로 2001년 한시법으로 제정된 후 개정이나 재입법을 통해 이어져왔다. 워크아웃은 법정 관리와 함께 구조조정의 중요한 축을 담당해왔다. 특히 정상화에 걸리는 기간이 법정 관리보다 훨씬 짧아 기업들이 선호해왔다. 정치권은 기촉법과 더불어 세제·정책자금 지원, 규제 완화 등으로 신사업 전환을 적극적으로 돕는 기업활력제고특별법의 연장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기활법은 내년 8월 일몰될 예정이다. 법원도 회생 절차 개시 전에 외부 전문가를 지정해 3개월 동안 자율적으로 구조조정을 할 수 있도록 법정 관리의 문턱을 낮추는 프로그램 도입을 추진한다고 한다.
외환위기 때보다 더 심각한 기업 부채를 방치하면 우리 경제의 회복은 요원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잠재 성장률이 1.9%로 처음으로 1%대로 하락하고 내년에는 1.7%로 미국(1.9%)보다 낮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야 정치권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나랏돈을 마치 제 돈인 양 물 쓰듯 하며 포퓰리즘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정치권이 진정 국민들을 위한다면 선심 정책이 아니라 경제와 글로벌 경쟁에 노출된 기업들을 살펴야 한다.
금융 당국은 한계 기업의 옥석을 가려 일시적 자금난을 겪는 우량 기업은 적극 지원하고 초저금리 대출로 연명해온 부실기업은 정리하는 구조조정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글로벌 혁신이 미국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배경에는 끊임없이 이뤄지는 구조조정이 있다. 조선이 호란과 왜란을 당하고 나라까지 빼앗긴 것은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위정자들이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율곡 이이, 남명 조식 등 나라를 걱정하는 선비들이 개혁을 요구하는 상소를 조정에 끊임없이 올렸지만 위정자들은 당파를 형성하고 정쟁에만 빠져 국난을 자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