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JYP의 연습생이던 조권은 훗날 걸그룹 원더걸스의 리더가 된 선예와 함께 월드 스타의 꿈을 키웠다. 어느 날 14세의 선예는 조권에게 “뮤지컬 ‘렌트’를 봤는데, 이 뮤지컬에서 배우 김호영이 맡은 ‘엔젤’ 역을 네가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두 연습생에게 ‘렌트’는 인생 첫 뮤지컬이었다. 그로부터 22년 뒤, 조권은 정말 ‘엔젤’이 되었다.
최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에서 만난 가수 겸 배우 조권(34)은 TV에서 보여지는 모습 이상으로 진지하고 신중했다. 뮤지컬 ‘렌트’는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 모여 사는 가난한 예술가들의 꿈과 열정을 그린 작가 조나단 라슨의 유작이다. 이 작품에서 조권은 드래그(Drag) 캐릭터 ‘엔젤’ 역할을 맡았다. 드래그 캐릭터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과 반대되는 성별처럼 치장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말한다. 극중 엔젤은 반짝이는 은색 하이힐을 신고 조명이 달린 초록색 치마를 입고 친구들에게 사랑과 열정, 희망을 전파하는 감초같은 역할이다.
조권은 “렌트의 오디션 공고를 보자마자 이제 내 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며 오디션을 회상했다. 우리나라에서 엔젤은 20여 년간 배우 김호영이 맡아 왔다. 뮤지컬 팬들은 김호영 다음 엔젤로 조권을 꼽아 왔다. 지난 2013년 뮤지컬을 시작했는데, 2014년 ‘프리실라’, 2020년 ‘제이미’ 등에서 모두 드래그 캐릭터를 맡았을 뿐 아니라 TV 방송에서 보여지는 그의 모습과 엔젤이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이번 캐스팅은 어쩌면 정해진 수순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렇게 당연하게 결정된 건 아니다. 그는 “14살 선예가 나에게 이 역할을 추천한 덕분에 렌트는 나의 첫 번째 뮤지컬이 되었고, 뮤지컬 배우가 된 이후부터는 줄곧 ‘엔젤’ 역할의 캐스팅 오디션을 주시했다”며 “오디션 보는 날 은색 정장을 입고 브로드웨이 배우들 보다 굽의 높이를 더 높여 12cm 구두를 신고 오디션장으로 향했다"고 말했다.
캐스팅 된 이후에도 늘 캐릭터를 연구하고 고민했다. “본인의 성격이 엔젤과 잘 맞으니 연습이 좀 더 수월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제가 방송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그 정도로 외향적이진 않다”면서도 “지금의 성격이 (드래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 있어) 신이 내린 달란트(소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사실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뮤지컬 배우로 전향하면서 드래그 캐릭터 역할을 맡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조권은 “어렸을 때부터 여성스럽다, 특이하다, 뭔가 틀린 것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지금은 이런 저의 성향이 특이한 게 아니라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오히려 자신감 있는 모습을 드러냈다.
뮤지컬 시장에는 ‘드래그 캐릭터’를 필요로 하는 작품이 많다. ‘헤드윅’, ‘킹키부츠’ 등은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러한 역할은 좀 더 농익은 인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러한 작품에서도 조권을 만나볼 수 있을까. 조권은 “헤드윅, 킹키부츠는 제가 30대 중반이 넘어서면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언젠가는 한국을 대표하는 드래그 캐릭터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