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제도 개선을 검토하고 있다. 첨단국가산업단지 육성 등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추진 중인 사업마다 불합리한 토지 규제에 가로막혀 있어 종합적인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한 번에 과도하게 풀 경우 난개발 및 용지 공급과잉, 부동산 투기 촉발 문제가 초래될 수 있어 실효를 내면서도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균형 잡힌 정책적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29일 대통령실과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지역 투자 활성화를 위해 그린벨트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보고받았다. 지역별로 추진 중인 개발 사업이 1970년대 만들어진 그린벨트 규제 때문에 잇따라 가로막히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대통령실에는 복수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제기된 그린벨트 제도 개선 건의가 쌓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경제 활성화를 위한 규제 개선’을 전면에 내세워온 윤 대통령은 그린벨트 제도 개선에 대해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글로벌 경쟁 시대에 우리 기업의 경쟁력이 그린벨트로 인해 막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역시 이달 16일 울산을 찾아 사업 현장을 돌아보며 “도심 복판에 그린벨트나 1·2급지가 많아 (울산은) 도로 개설이나 산업단지 개선에 어려움이 많다고 들었다”며 “모든 권한을 동원해 (문제 해결에)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그린벨트 제도 개선이 화두로 떠오른 것은 윤석열 정부가 추진 중인 15개 첨단국가산단 추진에 그린벨트가 주요 걸림돌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앞서 윤 대통령은 첨단국가산단 조성 계획을 밝혔던 3월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정부는 기존의 입지 규제에서 과감히 탈피할 것”이라며 “사업 준비 기간을 7년에서 5년으로 축소하고 지자체 그린벨트 해제 권한을 기존 30만 ㎡에서 100만 ㎡로 완화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같은 달 윤 대통령이 울산 산업 현장을 찾았을 때도 지역 경제인들이 “그린벨트 해제 권한을 지자체에 이양해달라”고 건의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개편 대상이 되는 그린벨트 역시 서울 행정 경계를 따라 분포한 그린벨트보다 15개 첨단국가산단과 주요 산업 지역에 집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설 예정인 경기 용인시 일대와 방위·원전 산업 중심의 창원 일대가 대표적이다. 울산은 지난해부터 산업단지와 도심 공원 조성을 위해 그린벨트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강기정 광주시장 역시 “군 공항 이전 부지는 그린벨트 해제 총량에서 제외해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공항을 옮기는 데 그린벨트 해제 총량을 소진하게 되면 정작 첨단산업단지를 만들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개편 내용 역시 복합 개발을 허용하기보다 지역 개발 사업 추진을 전제로 규제 부담을 더는 방식으로 한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윤 대통령이 발표한 바 있는 ‘사업 준비 기간 축소’가 ‘그린벨트 해제 패스트트랙’ 형태로 정리될 가능성이 높다. 울산과 광주 등의 건의를 수용해 공공성이 인정되는 국책 개발 사업의 경우 그린벨트를 해제하거나 환경 평가 1·2급지여도 개발을 허용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 역시 균형 발전에 필요한 부분에 한정된 그린벨트 해제 방침에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권대중 서강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세계적으로 지방에도 그린벨트를 두는 경우는 드물다”며 “서울 근교는 신중해야 하지만 지방은 필요하다면 해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충분히 검토해볼 만한 사안”이라며 “다만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과정에서 적절한 평가·심의 과정은 거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관계자는 “지방 각지의 산업단지 조성을 위한 법들이 상임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상황”이라며 “이를 신속히 처리해 산업단지 조성에 필요한 투자가 제대로 이뤄져야 (그린벨트 규제 완화의)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