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사람을 위한 전쟁은 없다

정혜진 국제부 기자

얼마 전, 지난해 러시아의 미사일 공습에 다리를 잃은 우크라이나 아동의 근황을 접했다. 사고 후 1년이 지난 지금 의족에 의지해 걷는 열두 살 아이의 입에서는 “어떤 새로운 꿈도 꾸지 않는다”는 말이 나왔다. 2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세계의 관심은 무뎌졌지만 오늘도 민간인들의 희생은 이어지고 있다. 전쟁 후 우크라이나에서는 1700여 명의 아동이 죽거나 부상했고 수백 명이 긴급한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상황에 처했다. 중동 분쟁의 전쟁터가 된 가자지구의 아동 희생자는 이미 6000명을 넘어섰다.


전쟁 장기화로 민간 희생자가 수없이 불어나고 있지만 정치권에서는 누구 하나 교전 중단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전쟁 당사국인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모두 평화를 위한 협상 재개를 꺼리고 있다. 반년 가까이 수행한 ‘대반격 작전’에서도 마땅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대로 전쟁이 끝날 경우 돌아올 막대한 책임에 초조할 것이다. 이미 우크라이나 내부에서는 “젤렌스키의 고집으로 새로운 전략들이 차질을 빚고 있다”는 우려가, 전선에서는 “러시아군이 좀비처럼 끊임없이 몰려든다”는 지친 목소리가 들려온다. 전쟁의 방아쇠를 당긴 푸틴 대통령은 외려 내년 공세를 준비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달 내년 국방비로 재정지출의 30%인 10조 4000억 루블(약 151조 원)을 배정했다. 비중으로 옛 소련 이후 최대이며 금액으로는 올해 대비 70% 증가했다. 러시아 내에서도 전쟁과 살상에 반대하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지만 푸틴 대통령은 내년 말 예정된 미국 대선 전까지 전쟁 상황을 끌고 갈 것으로 보인다.


중동 전쟁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두 달간 만 명 단위의 사망자가 쏟아졌지만 이스라엘 내부에서는 결론 없는 갈등만 지속되고 있다. ‘하마스 소탕’을 최우선 목표로 하는 강경 우파는 큰 희생을 치르더라도 전쟁을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미 사법 개혁, 안보 실패 등으로 자리가 위태로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연정 내 정당들의 압박을 무시할 수 없다. 자리를 지키려는 이들의 머리싸움이 이어지는 동안 전쟁에서는 사람들의 목숨이, 아이들의 미래가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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