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스&] '빅 컬렉터' 이건희…"명작은 값을 따지지 않았다"

■이종선 관장이 말하는 이건희 컬렉션
이종선 지음, 김영사 펴냄
北에 넘어갈 뻔한 '화조구자도'
실물도 보지않고 서둘러서 수집
호암미술관 20여년 이끈 李관장
이건희 컬렉션' 작품 69점 엄선
작품 얽힌 사연 등 뒷이야기 전해



이종선 전 호암미술관 부관장은 1976년 삼성문화재단에 합류한 이후 20여 년간 수집과 미술관 건립을 주도하며 실무를 총괄한 호암미술관의 실질적 책임자였다. 채용 이후 호암미술관 설립과 개관 및 운영을 담당했고, 전문 연구원에서부터 연구, 전시, 교육 등 활동을 총괄하는 학예연구실장을 거치며 삼성가의 국보급 문화재 150여 점 수집과 확보를 최전선에서 이끈 장본인이기도 하다.


특히 그는 2021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유족들이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의 시작과 완성을 함께한 이건희 컬렉션의 의의를 가장 잘 알려줄 수 있는 적임자이기도 하다. ‘이종선 관장이 말하는 이건희 컬렉션’은 그가 최측근에서 지켜본 수집가로서의 이건희 회장의 알려지지 않은 면면과 이건희 회장이 사랑한 명작에 대한 상세한 소개, 그리고 수집 과정에 숨겨진 에피소드 등이 두루 담긴 사실상 이건희 컬렉션 도록이라 할 수 있다.


책은 ‘빅 컬렉터’ 이건희를 되돌아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저자는 “이건희라는 인물을 되돌아 볼 때 비로소 ‘이건희 컬렉션’의 진정한 의의를 발견할 수 있다"며 “이건희 컬렉션의 가치는 단순히 유명하고 비싼 작품이 많아서가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물론 이건희 회장은 생전 싼 작품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다만 ‘좋은 물건’을 우선으로 구매하며 값을 따지지 않는 편이었다. 저자는 “이건희 회장은 별로 많이 묻지도 않고 매수 여부를 빠르게 결정했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특급이 있으면 컬렉션 전체의 위상이 올라간다’는 이건희 회장의 신념 덕분에 미술관에는 상당히 많은 명품이 모였다.


이건희 회장이 평생 모은 작품은 종류와 다양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건희 컬렉션을 포함해 이건희 회장이 평생 수집한 작품 중 69점의 명작을 엄선해 고미술과 한국 근현대미술품, 외국 미술품 등 세 가지로 분류해 소개한다. 이같은 작품 소개는 이미 언론을 통해서 숱하게 보도된 바 있기 때문에 새롭진 않다. 다만 저자는 작품에 얽힌 사연과 그 작품을 지켜온 수집가들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미술 애호가들에게 새로운 감상의 묘미를 선사한다. 예컨대 북한으로 넘어가 ‘김일성 컬렉션’이 될 뻔한 ‘화조구자도’를 실물도 보지 않고 급하게 환수하는 에피소드는 경영자 이건희가 수집을 할 때 얼마나 저돌적인지, 또 얼마나 전략적인지를 보여준다. 또 수집가 김동현은 고구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과거 기와집 세 채 값인 6000원에 산 후 집요한 일본 수집가들의 유혹으로부터 끈질기게 지켜냈고 이후 호암미술관에 이 작품을 양도한 이야기는 미술품 수집이 단순히 돈만 많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작가나 화상들은 아무에게나 작품을 팔거나 양도하지 않는다. 좋은 작품을 가지려면 오랜 시간 미술품의 소장자에게 신뢰를 쌓아야 한다. 이건희 컬렉션에 모인 모든 작품은 경영자 이건희가 긴 시간 소장자들에게 수집가로서 자신의 매력을 발산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또한 이건희 컬렉션이 ‘미술 사업을 통한 사회적 공헌’의 사례가 되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실제로 현재 이건희컬렉션은 전국의 공공 미술관과 박물관을 순회하며 전시되고 있다. 이건희 컬렉션 덕분에 최근 2년간 지방 거주자들은 대중은 격조 있는 근현대 명작을 쉽게 감상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미술작품 감상의 문턱은 크게 낮아졌다. 호사스러운 취미로 여겨진 미술품 수집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한국 미술시장은 최근 매우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 이 책은 이건희 컬렉션 속 작품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새기고 수집의 길잡이로 삼고 싶은 미술애호가들에게 최고의 안내서가 될 것이다. 3만3800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