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제약업계에 윤리경영이 필요한 이유

■오동욱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 회장

오동욱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 회장

약사법 개정으로 내년부터 의약품 공급자나 제약회사 등 관계자가 의료인 및 의료기관 종사자에게 법적으로 허용된 범위의 경제적 이익을 제공한 경우 지출 보고서를 통해 공개해야 한다. 경제적 이익이란 견본품 제공부터 학술대회 및 임상시험 지원, 제품 설명회와 같이 법적 완충지대가 마련돼 있는 합법적 행위를 말한다. 의료인에게 경제적 이익이 제공됐을 때 이를 제공한 공급자가 구체적인 내역이 담긴 지출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의무 사항은 기존에도 존재했다. 미국·유럽·일본 등 해외 주요 국가에서도 유사한 법이 시행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의료계 리베이트를 양지로 끌어내 관리하고 의약품 유통시장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법이라는 뜻에서 ‘선샤인 액트(Sunshine Act)’라는 용어로 불린다. 한국은 2018년부터 관련 법이 시행됐지만 지출 보고서를 공개할 의무가 빠져 있었다. 국내에서 의약품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이 의료인에게 제공한 경제적 이익 내역이 처음으로 공개되는 셈이다.


정부는 제약 업계에 윤리적이고 투명한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 국내 제약 업계에서 구조적으로 이뤄졌던 불법 영업 행위를 막기 위해 2010년 쌍벌제를 시행하며 리베이트를 제공·취득한 자를 모두 처벌하는 근거를 마련했다. 2016년부터 시행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은 의료인이 금품 수수 시 형사처벌을 내리도록 함으로써 리베이트 근절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 이번 지출 보고서 공개 제도와 의료기기 판촉영업자(CSO) 신고제 도입 등은 이러한 노력의 연장 선상에 있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제약 업계에서는 지출 보고서를 통해 공개된 내역이 자칫 대중에 오인될까 하는 우려도 적지 않다. 오해가 발생할 가능성을 우려해 의약학 발전에 필수적인 학술대회, 신약 임상시험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활용 등 신약 연구개발(R&D) 활동의 형태가 급속도로 변화하는 가운데 관련 규정이 부재하다는 것도 위험 요소다. 제약 업계 스스로 적법성을 확인할 수 없다 보니 R&D 활동에 제한이 생길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국이 반도체·자동차에 이어 헬스케어 산업 강국으로 도약하는 시점임을 고려할 때 제도적 공백을 채우기 위한 논의가 시작돼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그럼 이즈음에서 생각해보자. 정부는 왜 제약 산업 투명화를 위한 제도 개선 노력을 지속할까. 제약 업계와 의료계는 왜 자성의 목소리를 내야 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약 업계와 의료계의 윤리경영이 강화될수록 환자들, 나아가 전 국민이 혜택을 받기 때문이다. 투명한 제약·바이오 산업 환경은 환자들이 오직 치료 효과만을 고려해 의약품을 처방받아 복용할 수 있는 선결 요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업들도 잘 정비된 법 제도 아래 오롯이 R&D 활동에 집중할 수 있어야 블록버스터 신약 개발 환경이 마련돼 일자리 창출과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환자들이 더 좋은 신약에 접근 가능한 선순환 구조가 갖춰질 것이다. 정부와 제약 업계, 의료계 모두가 윤리경영과 준법정신의 시대적 소명을 가지고 각자의 자리에서 힘써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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