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회복 신호가 뚜렷해지는 가운데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마이크론 등 글로벌 빅3의 진검 승부가 내년 하반기에 펼쳐진다. 각 사는 프리미엄 D램 시장을 겨냥해 내년 일제히 고대역폭메모리(HBM) 5세대(HBM3e) 제품을 신무기로 내놓으면서 시장 재편을 노리고 있다.
3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내년 글로벌 D램 시장은 재고 대폭 축소에 따른 수요 확대와 제조사들의 단가 인상 기조에 힘입어 큰 폭으로 성장이 예상된다. 유진투자증권은 내년 D램 시장 규모가 올해 511억 달러(추정)에서 58.9% 오른 812억 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회복 속도가 상대적으로 더딘 낸드플래시 또한 올해 대비 32.9% 늘어난 460억 달러로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핵심 전장은 올해와 마찬가지로 HBM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는 SK하이닉스가 시장을 선점한 뒤 독주했다면 내년부터는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이 본격적으로 가세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차세대 HBM 시장에서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내년 3분기부터 HBM3e를 본격 양산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엔비디아의 차세대 그래픽처리장치(GPU)인 B100도 하반기부터 본격 판매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삼성전자로서는 자존심을 회복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키움증권은 최근 2024년 하반기에는 삼성전자의 HBM 생산능력이 SK하이닉스를 앞지를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메모리반도체의 최종 수요처가 양극화되고 있는 가운데 고성능 메모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질 것”이라며 “주요 업체들도 구공정 제품은 감산 기조를 유지하면서 고부가 제품의 생산능력은 끌어올려 시장 변화에 대응하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현재 삼성전자·SK하이닉스 모두 내년 HBM3 생산 물량이 모두 ‘솔드 아웃’ 될 정도로 수요가 몰리고 있어 생산능력 확충에 대한 투자 의지가 시장 장악력에 중요한 요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연말부터 본격적인 HBM3 공급에 착수할 것으로 알려진 삼성전자는 내년 HBM 생산능력을 올해 대비 25% 이상 늘려 경쟁사 대비 우위를 차지하겠다는 전략을 내놓았다. 키움증권은 내년 4분기에 삼성전자가 HBM 물량 점유율에서 52%까지 치고 올라와 SK하이닉스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했다.
D램과 낸드의 가격도 내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턴어라운드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올해 감산 효과에 따라 내년 상반기 중에는 D램의 재고가 정상화하고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가격 인상세가 나타날 수 있다고 반도체 업계는 보고 있다. 통상 D램 사이클이 수축기를 지나 완화기에 접어들면 공급 과잉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지만 현재는 대다수 반도체 업체들이 첨단 공정 투자에 매달리고 있어 증산 여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바꿔 말하면 그동안 누적된 생산 노하우에 따라 D램 흑자 폭이 달라진다는 의미다.
다만 메모리 사업의 한 축인 낸드의 경우 내년 시장 개선 전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본궤도 진입까지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각 사의 전략은 낸드에서 최대한 적자 폭을 줄이면서 고부가 D램에서 수익성을 최대한 끌어내는 데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김록호 하나증권 연구원은 “D램은 이익 가속화, 낸드는 적자 축소로 실적 개선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