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巨野, 행정부 예산편성권 무시해 재정 비효율·낭비 극심” [청론직설]

◆옥동석 전 조세재정연구원장(인천대 명예교수)
국회, 행정부에 ‘예산 더 써라’·예타 면제 남발 사상 처음
英·佛 등 행정부 예산편성권 존중해 포퓰리즘 막고 번영
우리 헌법 ‘국회의 예산 증액 금지’…巨野 제자리 복귀를
재정준칙 법제화·연금개혁 서두르고 공기업 민영화 해야

옥동석 전 조세재정연구원장이 4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국회와 야당은 20세기 초에 영국·프랑스 등 선진국이 이룬 재정 개혁의 수준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호재 기자

여야 정치권이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포퓰리즘 정책 경쟁을 벌이고 있다. 여야 모두 경쟁적으로 선심 정책을 쏟아내는 가운데 대구·광주 달빛고속철도 사업 등 일부 사업은 담합해 밀어붙이고 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을 지낸 옥동석 인천대 명예교수는 4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행정부에 돈을 더 쓰라고 하는 것은 21대 국회가 처음”이라며 “국회와 거대 야당이 행정부의 예산편성권을 존중하지 않아 국가 재정의 비효율과 낭비가 극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영국과 프랑스 등 선진국은 행정부의 예산편성권 존중 전통과 시스템 마련을 통해 포퓰리즘을 극복하며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왔다”며 “우리 국회와 야당도 행정부의 예산편성권을 존중하고 재정준칙 법제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앞다퉈 포퓰리즘 정책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국회가 행정부에 재정 운용을 건전하게 하라고 비판하지 않은 것은 21대 국회가 처음이다. 야당이 행정부에 더 돈을 쓰라고 하는 것도 역대 국회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국회가 어떤 측면에서 행정부의 예산편성권을 존중하지 않고 있다는 것인가.


△우선 국회가 정부의 쌀 의무 매입을 강제하는 양곡법, 대학생 무이자 대출법 등 재정이 들어가는 법안을 무분별하게 추진하고 있다. 두 번째는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입법을 쏟아내는 것이다. 예타는 행정부가 예산 낭비를 막을 수 있도록 도입된 제도인데 국회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마구잡이로 면제해주고 있다. 세 번째는 행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에 대해 시시콜콜한 내용을 수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 예산 심의의 핵심 기능은 지출 규모, 경기 대응 등에 따라 재정 총량을 결정하고 국방·복지 등 큰 부문별로 배분 규모를 정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필요하면 세부 사업을 논의할 수 있지만 넣고 빼는 것은 행정부의 영역이다. 국회가 행정부의 예산편성권을 존중하고 보장하게 된 역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행정부의 예산편성권 보장의 역사는 어떻게 시작됐는가.


△서구 역사에서 절대왕정에서 민주주의로 넘어갈 때 왕이나 왕의 실권을 없애고 의회만 두면 모든 게 다 잘될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 의원들이 국왕들보다 더 해먹었다. 제1차 세계대전 전에 영국이 가장 먼저 행정부의 예산편성권을 존중하는 전통을 세웠다. 이후 영국은 재정 포퓰리즘을 극복하고 굉장히 안정적으로 재정을 운영하며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왔다. 미국은 건국 당시 헌법으로 의회에 예산권을 줬다가 재정 남용이 심각하자 1차 세계대전 후 행정부에 예산편성권을 부여하는 법을 만들었다. 프랑스는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에 패한 후 1958년 드골 헌법 때 의회가 행정부의 예산안을 마음대로 바꾸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을 넣었다. 민주국가들은 행정부 예산권 존중 전통이나 시스템 구축을 통해 재정 포퓰리즘을 극복해왔다.


-우리 헌법은 행정부의 예산편성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나.


△다행히 세계사적 흐름을 잘 파악해 제헌 헌법에서 행정부에는 예산편성권, 국회에는 심의 확정권을 줬다. 권위주의 정부들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했다. 1987년 민주주의가 본격 도입된 후에도 이런 전통은 유지됐다. 행정부가 확장 재정을 펴려고 하면 국회가 견제했다. 그런데 21대 국회에 들어 완전히 역전됐다. 문재인 정부가 확장 재정안을 내놓았는데도 국회는 더 쓰라고 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거대 야당 주도로 국회가 행정부의 예산편성권을 무시하는 행태가 마구 벌어지고 있다. 선진국들이 20세기 초반에 이룬 개혁의 수준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재정준칙이 거대 야당의 몽니로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영국은 2차 세계대전 후 케인스의 경제학 이론을 받아들여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적자재정을 용인했다. 영국은 이후 적자가 불어났고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이에 마거릿 대처 정부가 건전재정 확립을 위해 재정준칙을 도입했다. 적자예산을 편성하더라도 최소한의 기준을 지키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재정준칙은 전 세계로 퍼졌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튀르키예와 한국을 제외하고 모두 도입했다. 우리 국회는 행정부의 예산편성권을 존중하는 자세를 회복하고 행정부 마음대로 예산을 늘리지 못하도록 하는 재정준칙 도입도 서둘러야 한다. 정권이 바뀐 후에도 서로 지킬 수 있도록 반드시 여야가 합의해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또 준칙을 관리하고 재정 건전성에 대해 중립적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독립적인 재정위원회를 둘 필요가 있다.



옥동석 인천대 무역학부 명예교수. 이호재기자

-우리 정부의 재정 건전성은 어느 정도인가.


△재정 건전성은 국회 예산정책처와 정부 기획재정부가 정기적으로 조사하는 ‘장기 재정 전망’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예산정책처의 2022년 장기 전망을 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D1)이 2040년 100%를 넘어서고 2060년에는 161%에 이른다. 우리 재정이 일본식(2021년 263%)으로 진행돼 지속 가능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고령화가 본격 진행되면 현행 제도 수준을 유지해도 나랏빚이 급증한다. 게다가 이런 장기 재정 전망은 굉장히 보수적으로 잡혔다.


-보수적으로 장기 재정 전망을 했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사학연금과 국민연금이 고갈돼도 재정 지원을 안 하고 건강보험의 적자 보전도 현 수준을 유지한다는 전제하에 이뤄졌다. 고령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이런 기금은 급속히 줄어들어 소진된다. 또 국가채무(D1)에는 주요 국가들에 비해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공기업 부문이 빠져 있다. 세계적인 금융 위기가 오고 구조조정에 재정이 투입된다면 국가채무는 훨씬 더 악화할 수 있다. 정부 지출을 줄이지 않고 연금 개혁을 서두르지 않으면 일본보다 훨씬 험악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일본은 GDP 규모가 우리보다 4배 정도 크고 굉장히 많은 대외 자산을 보유해 오랫동안 버텼지만 엔화 급락 등 한계에 다다른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연금 개혁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개혁안이 보험료율만 인상하거나 소득대체율(생애 평균 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 비율)도 같이 올리자는 두 가지로 압축됐다. 첫 번째 안은 연금의 지속 가능성에, 두 번째 안은 국민들의 노후 생활 안정에 중점을 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노후 안정 안은 50~70대만 보장하고 20~40대나 그 미만 연령은 기금이 고갈돼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연금 개혁은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공기업 개혁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공기업 개혁은 명확한 국제 비교 통계가 없어 사회적 이슈가 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공기업 부문 비중이 휠씬 크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일반 공기업뿐 아니라 한국산업은행·중소기업은행 등 금융 공기업도 다른 나라들에 비해 월등히 크다. 가능하면 민영화를 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개별 공기업의 책임성을 강화하도록 법에 의해 설치된 특수법인의 지위를 없애고 상법상 주식회사로 전환해 지분을 소유하는 형태로 바꿔야 한다.


-조세·재정 개혁을 어떤 방향으로 추진해야 하는가.


△소득·법인·부가가치세가 우리나라 세수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조세제도의 정책 목표로 경제성장과 소득분배가 너무 혼재돼 있다는 게 문제다. 소득분배를 목표로 하는 정책은 소득세에, 경제성장을 목표로 하는 정책은 나머지 세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우리 소득세의 경우 최고 세율은 높지만 소득·세액공제가 많아 실효세율이 낮다. 감면·공제 제도를 줄여서 소득분배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GDP 성장이 없으면 분배도 없다. 법인세율은 전 세계적으로 기업 간에 경쟁이 일어나는 만큼 글로벌 수준에 맞춰주는 게 필요하다. 경제성장이라는 측면에서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면 세율이 10%로 주요 국가(OECD 평균 19.2%)에 비해 낮은 부가가치세율 인상을 검토하는 게 좋다.


-상속세 최고 세율이 최대주주 할증까지 감안하면 60%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고 OECD 평균의 4배에 달한다.


△경제성장을 이끄는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도록 법인·상속세 제도에서 평균 수준으로 맞춰주는 노력을 해야 한다. 가업을 상속할 경우 책임도 함께 넘겨받는 만큼 훨씬 너그럽게 대해줘야 한다.


-고부담·고복지의 유럽형과 민간 활력을 중시하는 미국형 중 어느 것이 우리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하는가.


△장기 재정 전망을 보면 지금 제도를 유지해도 복지가 유럽 주요국이나 OECD 수준까지 올라가게 된다. 고령화 수준에 맞춰 비교해야 한다. 그런데 혁신과 지식 기능, 자금과 인력 등이 유럽이 아니라 미국으로 집중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생존·번영하려면 국가 경쟁력을 제고하고 오히려 복지 지출을 구조조정해 빈곤 계층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거대한 인구 고령화의 쓰나미가 몰려오기 전에 방파제를 쌓아두는 게 중요하다.



◆He is···


1957년 경남 거제에서 태어나 부산고,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같은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근혜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정기획조정위원을 맡아 정부 조직 개편의 밑그림을 그렸다. 인천대에서 무역학과 교수, 물류대학원장, 산학협력단장, 대학발전본부장을 지냈고 한국재정법학회장,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과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거래비용 경제학과 공공기관’ ‘권력구조와 예산 제도’ ‘함께 못사는 나라로 가고 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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