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북촌한옥마을에 '레드존'…오후 5시 넘어 관광 땐 과태료

■종로구 용역 최종보고서 입수…4개 구역 특별관리
가회동 일대 한옥 밀집지역 '레드존'
관광객 방문시간 제한, 원주민 보호
정독도서관 동·서쪽 '오렌지존'은
쓰레기 무단투기·소음 등 집중 계도
안국역~삼청공원입구 관광버스도 통제
7일 주민공청회 거쳐 이르면 내달 지정

레드존으로 지정될 북촌로 11길 일대. 연합뉴스

2025년부터 서울 종로구에 있는 북촌한옥마을을 오후 5시 이후에 방문하면 과태료를 내야 할 수 있다. 2000년대 들어 관광객이 몰리며 쓰레기·소음 등 ‘오버투어리즘’ 문제가 심각해지자 종로구가 정주권 보호를 위해 내놓은 조치다.


5일 서울경제신문이 입수한 ‘북촌 특별관리지역 지정 및 관리계획 수립 연구용역’ 최종 보고서에 따르면 종로구는 이르면 다음 달 서울시가 설정한 북촌 지구단위계획구역 전체를 특별관리지역으로 설정한다. 삼청동·가회동·계동·송현동 등 11개 법정동이 포함된 112만 8372.7㎡가 대상이다.




관광진흥법상 시도지사나 시장·군수·구청장은 수용 범위를 초과한 관광객의 방문으로 자연환경이 훼손되거나 주민의 평온한 생활환경을 해칠 우려가 있는 지역을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할 수 있다.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되면 조례에 근거해 관광객 방문 시간 제한, 이용료 징수, 차량·관광객 통행 제한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다.


종로구는 북촌한옥마을을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하되 정주권 보호와 관광객 편의를 모두 고려해 10% 면적에 해당하는 12만여 ㎡ 구역에서 방문 시간 제한, 차량·관광객 통행 제한, 계도 활동 등 행정조치를 시행한다. 레드존(1개), 오렌지존(2개), 옐로우존(1개) 등 4개 구역을 설정해 집중 관리하고 관광버스 진입을 막는 내용이 골자다.



2018년 6월 2일 서울 종로구 북촌로에서 북촌한옥마을운영회 관계자들이 관광객 방문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선 가회동 북촌로11길 일대를 레드존으로 묶고 오후 5시부터 오전 10시까지 관광객 입장을 제한한다. 정독도서관 북쪽 3만 4000㎡ 일대 구역으로, 관광객들 사이에서는 인기 사진 촬영 장소로 유명한 ‘핫스폿’이다. 방문 제한 조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면 관광객과 관광 업체에 과태료를 부과한다. ‘북촌 8경’ 중 4·5·6·7경이 이곳에 있어 레드존 지정 후에는 8경 중 절반은 야간에 볼 수 없게 되는 셈이다. 내년 상반기 안에 조례 발의·의결·공포를 마치면 2025년부터 방문 시간 제한 조치가 시행된다.


정독도서관 서쪽 화동 북촌로5가길 일대(2만 6400㎡), 현대건설 사옥 북쪽 계동 계동길 일대(3만 4000㎡)에는 오렌지존이 설정된다. 기념품 가게, 숙박시설 등 상업시설이 많은 점을 고려해 방문 시간을 제한하지는 않지만 공무원, 관광경찰, 주민(북촌지킴이)이 관광객들의 쓰레기 무단 투기와 소음 발생을 막는 계도 활동이 이뤄진다.


마을버스 북촌 입구 정류장(감사원 방면) 동쪽, 중앙중·고 남쪽 가회동 북촌로12길에는 1만여 ㎡ 규모 옐로우존이 설정된다. 한옥 거주민이 상대적으로 많지는 않지만 폐쇄회로(CC)TV 모니터링을 하면서 방문객이 많아지면 순찰에 나선다. 특별한 조치는 없지만 잠재적으로 레드존·오렌지존 지정이 가능하다.


안국역에서 북촌한옥마을로 진입하는 북촌로 1.5㎞ 구간(2만 7500㎡)은 관광버스 통행제한구역으로 지정된다. 그동안 마을 입구에 단체관광객 승하차가 이뤄졌지만 2026년부터는 안국역부터 삼청공원입구까지 연결하는 북촌로에 진입할 수 없고 진입 시 운전자에게 과태료를 물린다. 이를 위해 종로구는 내년부터 문화재청·서울시와 협의해 한옥마을 반경 1~1.5㎞ 거리에 있는 청와대 무궁화동산, 경복궁역 6번 출구, 탑골공원, 열린송현녹지광장, 경복궁 버스 주차장에 승하차장을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종로구가 과태료까지 부과하면서 관광객 진입을 제한하는 것은 북촌 주민 반발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단체관광이 급증하고 소음과 사생활 침해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원주민이 북촌을 떠나는 현상도 심각해졌다. 올해 삼청동과 가회동 주민의 유출은 2018년 대비 각각 16.1%, 9.6% 늘면서 서울시의 4배, 종로구의 2배를 기록했다.


주민들은 정주권 보호, 덤핑 관광 근절을 위해 과태료 부과와 관광버스 진입 제한에 긍정적이지만 이러한 조치가 실제 얼마나 큰 효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논의 초기 안동 하회마을이나 순천 낙안읍성 민속마을처럼 북촌 관광객에게 입장료를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이번 계획에서 이용료 징수는 빠졌기 때문이다. 어느 구간에서부터 입장료를 낼지 구획이 어렵고 실현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레드존을 제외하면 이미 시행 중인 야간·아침 시간 방문 금지 권고와 큰 차이도 없다.


실제 과태료가 제대로 부과될지도 지켜봐야 한다. 방문 제한 시간 동안 레드존을 드나드는 행인이 거주민인지, 관광객인지 판단하기 어렵고 레드존 내 한옥 숙박시설 이용객의 야간 출입도 막힐 수 있기 때문이다. 종로구 관계자는 “주민 신분을 확인하기 위한 ID카드 발급 등 여러 가지 방안을 논의 중”이라며 “공청회에서 주민 의견을 수렴해 운영 방안을 최종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종로구는 7일 주민 공청회를 연 뒤 서울시 의견 수렴, 문화체육관광부 특별관리지역 지정 신청·검토를 거쳐 이르면 다음 달 특별관리지역 지정을 확정 고시한다. 입주 시간 제한, 과태료 부과 등 조치 효과를 살펴 서촌으로까지 확대 적용할지 검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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