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과 미술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유물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 따라 다르게 정의된다. 유물이 ‘범주화’를 거쳐 특정시점에 대중에게 전달되는 방식은 대개 ‘동시대 사람들의 동기’를 보여준다”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3’ 후보 중 한 명인 한국계 콜롬비아 작가 갈라포라스-김은 최근 진행한 국현 뉴스레터 인터뷰에서 유물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 대해 이같이 답한다. 그는 오랜 시간 유물과 시대가 관계 맺는 방법을 독특한 방식으로 탐구하며, 박물관의 분류 방식에 따라 유물이 갖는 의미가 달라지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며 세계의 주요 유물 소장 기관과 소통하는 적극적 방식의 작업을 진행해 왔다. 최근 해외로 반출된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국립현대미술관과 리움미술관 등 서울의 주요 대형 미술관 두 곳에서 그의 전시를 진행하면서 미술 애호가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작가는 국립현대미술관이 매해 선정하는 ‘올해의 작가상’ 후보 중 첫 번째 외국 국적 작가다. 내년 3월 31일까지 이어지는 ‘올해의 작가상 2023’ 전시에서 작가는 남겨진 문화유산과 유물들이 박물관의 현대적 분류법에 따라 본래의 의미가 잊혀지거나 재해석되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전라북도 고창의 고인돌과 죽음을 주제로 한 신작 ‘세월이 남긴 고색의 무게’를 신작으로 발표했다. 이전에도 고대 마야와 이집트의 고대 유물 등을 소재로 한 작업을 진행했는데 이번 신작 고창 고인돌 작품과 이전 작품은 공통점이 있다. 과거의 인물들이 ‘영원함’을 믿으며 유물을 제작했다는 점이다. 이 유물들은 소원대로 오랜 시간 인류와 함께 했지만, 정체성마저 영원한 건 아니다. 유물이 여러 권력자와 기관의 손을 거치면서 재구성됐기 때문이다.
전시실에는 유물 소장처의 관장 등과 대화를 나눈 편지도 작품의 일부로 공개됐다. 작가는 해당 유물을 처리하는 기관의 담당자가 자신의 작품의 첫 번째 관람객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대부분 기관이 소장품 보존과 관련해 해결해야 할 비슷한 문제를 갖고 있다”며 “각 기관의 담당자들과 이메일을 통해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오랜 작업 기간을 가졌고, 이 편지를 공개함으로써 관람객이 간결한 방식으로 저와 각 기관의 소통을 경험하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리움미술관은 소장하고 있는 다양한 유물과 갈라포라스-김 작가의 국보와 관련한 작품 3점을 함께 전시해 관람객의 생각 폭을 넓혔다. 리움미술관은 이번 전시에서 남북한의 국보, 일제강점기 반출된 문화유산, 고미술품의 전시 방식을 다룬 작품을 통해 국가와 미술관 등의 기관이 유물을 관리하는 방식, 또 식민지배와 분단의 역사가 우리 문화유산의 정체성을 바꾼 과정 등을 소개한다. 갈라포라스-김은 이같은 전시 의도를 구현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작가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은 ‘국보 530점’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남북한의 국보 유적을 색연필로 그려 나란히 배치했다. 이 그림 속 모든 유물은 분단 이전 조선이라는 나라의 것이었다. 하지만 해방 이후 둘로 나누어지고 서로 다른 형태의 국가에서 분류 및 관리됐다. 작가는 이들을 다시 한 자리에 나란히 놓고 오랜 시간 존재한 ‘유물’의 정체성을 국가와 제도가 부여한 것은 아닌지 묻는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의 신작은 3점 뿐이지만 리움미술관은 소장 유물 10여 점은 함께 전시함으로써 감상자들로 하여금 ‘유물의 의미’를 좀 더 깊이 탐구하도록 했다. ‘일제 강점기에 해외로 반출된 한국 유물 37점’은 해외로 반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 유물 37점을 그린 작품으로 이병철 삼성 창업 회장이 일본에서 문화유산 수집에 대한 사명감을 갖고 들여온 것으로 전해지는 고려 불화 ‘아미타여래삼존도’ 옆에 전시돼 있다. 두 작품은 문화유산 반출 문제를 다룬다. 문화 유산을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 바라보는 관점과 민족 고유의 유산으로 바라보는 관점 등 유물을 둘러싼 서로 다른 시선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