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하다가 숨진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 ‘고(故) 김용균 씨 사망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원청에 책임이 없다는 최종 판단을 내놓으면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시행을 요구하는 노동계의 요구가 설득력이 잃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노동계는 이번 판결이 중대재해처벌법 강화 필요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대법원은 7일 김 씨 사망 사건과 관련해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에 대해 “원심 판결에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에서의 안전조치 의무 위반, 인과관계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무죄를 확정했다. “피고인(원청 법인 및 대표)이 태안발전본부 내 개별적인 설비 등에 대해서까지 작업환경을 점검하고 위험 예방 조치 등을 이행할 구체적·직접적 주의의무를 가진다고 보기 어렵다”는 원심 판단을 그대로 유지한 셈이다. 산업현장에서의 모든 안전사고에 대해 원청의 책임을 묻는 것은 과도하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이는 사망 사고 등 중대한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원청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를 처벌을 강화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특히 이번 사건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의 계기가 된 상징적인 사건인 만큼 실효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김 씨의 사망 사고 이후 시민사회와 정치권에서는 중대한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를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하자는 요구가 잇따랐고 2021년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지난해 1월 27일부터 시행됐다. 그동안 경영계와 노동계는 중대재해처벌법 필요성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여왔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내년 1월 27일부터 50인 미만 사업장(건설업의 경우 공사 금액 50억 원 미만)으로 확대 적용을 앞두고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경영계에서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중대재해법을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망 사고에 대한 예방보다는 원청 대표에 대한 과도한 처벌에 무게를 두고 있어 기업 리스크만 높이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지적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한 관계자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준수하라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며 “중소기업이 중대재해법 규정을 사업장 현실에 맞게 적용해 매뉴얼과 절차를 갖추고 지속적으로 실행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설명했다.
경총은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중대재해법 적용 시기를 2년 연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전관리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에 처벌이 집중되면서 회사 폐업, 근로자 실직 등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경총은 이들 기업의 특성을 고려해 경영 책임자의 안전 의무를 재설정하고 안전 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정부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 노동계는 김 씨 재판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오히려 중대재해처벌법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노총은 이날 성명을 통해 “대법원 선고는 (중대재해법 모법인) 산업안전보건법의 처벌 한계와 중대재해법 제정의 정당성, 엄정한 법 집행의 필요성을 확인시켰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원청의 고용 관계를 형식적이고 지나치게 협소하게 해석한 판결”이라며 “김 씨와 같은 죽음을 막기 위해 중대재해처벌법은 더욱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