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통공사가 발표한 2023년 1월~10월 서울지하철1~9호선의 일평균 승차인원은 430만 8652명이다. 수도권 전역에 뻗어 있는 지하철은 시민들의 발이 되는 우리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지만 지하철에서의 범죄가 늘어나고 있어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 불법촬영, 성추행, 절도는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며 최근 ‘묻지마 칼부림 테러’의 기승으로 시민들의 불안이 가중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지하철 범죄에 대응하고 사건 수사를 책임져야 할 지하철 경찰대는 인원이 대폭 감축될 전망이다. 서울을 제외하고 지하철이 있는 도시에는 지하철 경찰대를 폐지하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서울경제신문이 증가하는 지하철 범죄와 지하철경찰대 폐지 논의에 대해 들여다봤다.
경찰청이 밝힌 ‘서울지하철경찰대 112 신고접수 현황’에 따르면 2019년 9732건이었던 신고 건이 매년 증가해 2022년 1만3220건이 접수됐다. 2023년 1월~9월까지는 1만2623건의 신고가 접수돼 지난해 신고 건수에 다가서고 있다. 이 중 불법촬영은 2019년 217건에서 2022년 740건으로 약 3배 증가해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22년 성폭력 안전실태조사 연구’에 따르면 불법촬영 피해 경험을 묻는 문항에서 ‘나의 동의 없이 신체가 촬영된 적이 있다"고 답한 사람의 19.8%가 ’버스, 기차, 지하철, 택시, 항공기, 선박 등 교통시설 내부'라고 답했다. 여성 응답자로 범위를 좁히면 30.1%가 이 같은 교통시설 내부에서 불법촬영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안전해야 할 공간이지만 실제 지하철에서 시민들이 느끼는 성추행에 대한 우려는 상당했다. ‘성폭력 피해에 대한 두려움’을 묻는 질문에 ‘지하철, 버스 등에서 성추행을 겪을까봐 두렵다’고 말한 남·녀는 전체 응답자의 23.7%에 달했다. 그 중 19~29세 여성은 무려 51%가 두려움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하철 내 절도 범죄도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잠든 취객의 휴대전화를 갈취하는 사건이 심심치 않게 보도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3인조 러시아 소매치기범들이 경찰에 검거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서울경찰청 지하철경찰대는 지난 11월 13일 러시아 국적 여성 A(38)씨와 남성 B(45)씨, C(45)씨를 소매치기(특수절도) 혐의로 긴급체포해 지난 15일 구속했다고 22일 밝혔다.
이들은 각자 역할을 분담해 지하철 전동차에서 하차하는 피해자 앞을 가로막는 한편 피해자의 시선을 분산시킨 후 물건을 훔치는 수법으로 수천만 원 대의 범죄수익을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범행은 서울 지하철 3, 4, 9호선에서 총 3차례 이뤄졌다.
지난 8일 지하철에서 지갑을 도난 당했다는 내용의 피해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보하고 이들 조직이 승·하차할 것으로 예상되는 역에 잠복·미행해 현장에서 검거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이 같은 절도, 점유이탈물횡령 범죄도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19년 620건이었던 신고 건 수가 2022년 1158건으로 대폭 증가했다가 2023년 1월~9월 기준 904건 접수됐다.
성폭력, 절도 등 범죄 뿐만 아니라 최근 시민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흉기 난동 범죄 예고글로 인해 서울교통공사(공사)는 이에 대응해 경찰과 지하철 보안관의 역사 내 합동순찰을 강화에 나섰다.
지난 8월 공사는 “지하철 이용시민의 안전 확보를 위해 우선적으로 질서유지 업무를 담당하는 지하철보안관과 경찰의 합동순찰을 4일부터 대폭 강화했다”면서 “특히 범죄예고 대상으로 알려진 역에는 다수 경찰과 보안관이 상주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산교통공사도 부산경찰과 손 잡고 도시철도 치안 강화에 나섰다.
지난 5일 공사는 부산역 역무안전실에서 부산경찰청, 부산시자치경찰위원회와 도시철도 치안 강화를 위한 상호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에 올해 연말까지 부산도시철도 부산역, 동래역, 수영역 등 1~4호선 28개 역사에 역사 출구 인근 안심거울, 화장실 입구 후면반사경, 화장실 칸막이 상단 빈 공간을 가리는 안심 스크린 등 422개의 범죄 예방 시설물이 설치될 예정이다.
문제는 지하철 범죄가 증가하고 그 수법도 더욱 다양화되는 상황에서도 경찰이 조직 개편을 통해 지하철 범죄의 최일선 수사 역량인 지하철 경찰대를 폐지 또는 감축하는 논의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지난 9월 18일 ‘일선현장 치안역량 강화’를 골자로 하는 조직재편 추진안을 발표했다. 개편안에는 서울, 경기남부, 경기북부, 인천, 대구, 부산 등 전국 6개 시도에서 임무수행하는 지하철경찰대를 인력 감축 대상에 포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중 서울을 제외한 5개 시도 지하철경찰대는 폐지를, 서울은 현재 183명인 지하철 경찰대 규모를 64명 줄이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곳곳에서 지하철 경찰대가 폐지 수순을 밟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은 “증가하는 지하철 범죄에 대응하려면 지하철 경찰대 인력과 예산을 확충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실제 서울을 비롯한 각 지역 지하철 경찰대의 규모는 최근 5년간 제자리 걸음인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은 180명 규모에서 지난해 11월 3명 증원 돼 183명에 그쳤으며 부산, 대구, 경기남부와 경기북부는 각각 13명, 8명, 12명, 7명으로 변동이 없었다. 인천은 2022년 7월 기준 9명에서 현재 2명 줄어 7명이 근무하고 있다.
서울 강서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 모(28)씨는 “지난해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도 그렇고 지하철역에서의 불법촬영과 성추행 등 범죄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지하철 역에서 즉각 투입 가능한 인력을 줄이고 어떻게 빠른 대처를 할 수 있다고 보는지 의아하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