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소라가 데뷔 30주년을 맞아 오랜만에 공연을 열고 팬들과 만났다. 2019년 연말 콘서트 이후 코로나19 등으로 공연하지 못한 지 4년 만이다. 이소라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팬을 향한 애틋함이 느껴졌다.
지난 10일 서울 경희대학교 평화의전당에서 이소라의 단독 콘서트 ‘소라에게’가 개최됐다. 이번 공연은 지난 7일부터 나흘간 열린 공연의 마지막 회차다. 4년 만에 열리는 만큼 콘서트 티켓은 오픈 당시 전석 매진을 기록할 정도로 음악 팬의 큰 관심을 받았고, 이에 이소라는 당초 3회차였던 공연에 한 회차를 추가하기도 했다.
◇30년, 이소라가 선사하는 추억여행 = 공연은 마치 거대한 타임머신을 탄 듯했다. 이소라가 1990~2000년대 진행한 프로그램 포맷을 공연에 활용한 것. 다섯 번째 트랙 리스트인 '제발'이 끝난 후, 스크린에서는 앳된 모습의 이소라가 흑백으로 등장했다. 지난 1996년 첫 방송해 전국민적으로 사랑받은 '이소라의 프로포즈' 1회 방송분이었다. 음악 팬들에게 유명한 엔딩 편지를 낭독하는 27년 전의 이소라가 나왔다. 이날 엔딩곡은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 이소라는 마치 1회 방송으로 돌아간 것처럼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를 열창했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 방송됐던 '이소라의 FM 음악 도시'를 재현하는 무대도 올랐다. 도시 곳곳에서 생업을 살며 라디오를 듣는 그 시절 사람들의 생활상이 담긴 VCR이 공개됐다. 현재의 서울 전경과, 1990년대 레트로한 시민의 일상이 교차하며 등장하는 연출은 마치 이소라의 공연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공연 중반 무렵에는 라디오처럼 팬들에게 직접 받은 사연을 읽는 코너도 마련됐다. 10일의 사연 당첨자는 이소라를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신혼여행을 미루고 함께 공연에 온 새신랑이었다. 이소라는 관객석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을 향해 "결혼 정말 축하드린다"고 따뜻한 인사를 건넸다.
◇시대를 초월한 목소리와 아름다운 노랫말 = 1993년 낯선 사람들의 보컬로 데뷔한 이소라는 '난 행복해', '기억해 줘', '처음 느낌 그대로', '제발', '바람이 분다', '청혼'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 등 숱한 히트곡을 남겼다. 유니크한 음색과 풍부한 성량, 기교가 아닌 소리의 공명 그 자체에 집중하는 이소라의 보컬은 '귀가 아니라 가슴으로 듣는다'는 평을 받는다.
공연에서는 '너무 다른 널 보면서', '처음 느낌 그대로', '제발', '청혼' 등 팬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이소라의 히트곡이 무대 위에 올랐다. '시인들이 뽑은 가장 아름다운 노랫말'에 선정된 곡인 '바람이 분다'도 라이브로 들을 수 있었다. '데이트', '랑데부', '해피 크리스마스', 첫사랑' 등 이소라의 노래 중 드물게 명랑한 곡도 무대에 등장해 연말 공연에 따뜻함을 더했다.
◇특별 게스트 이문세 "만감 교차해" = 이날 현장에는 이소라의 공연에서 거의 볼 수 없는 '게스트'가 등장했다. 선배 가수 이문세였다. 두 사람은 1993년 이소라의 데뷔 공연을 한 '이문세 쇼'에서부터 인연을 맺은 막역한 사이다. 이문세의 등장은 이소라도 몰랐던 깜짝 이벤트. 이소라는 크게 당황하면서도 이문세를 깊게 끌어안으며 감격스러운 마음을 드러냈다.
이문세는 "여러분, 이소라 씨가 30년이 됐다. 1년 전, 10년 전, 20년 전하고 다르게 오늘은 더 많은 분이 (이소라의 공연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펑펑 우는 분도 있고, 눈물을 한 줄기 조용히 흘리는 분도 있더라"며 "이소라의 노래를 듣는다는 건 단순히 히트곡이다, 위안을 얻는다, 이런 게 아니라, 우리 함께 다 같이 살아왔구나, 이 험하고 궂은 세상을 같이 짊어지고 이겨내고 있구나, 이런 위로와 다독거림이 있는 것 같다. 여러 가지 만감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래 하고 볼 일인 것 같다"고 이문세가 말하자, 이소라 역시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래 함께 끝까지 곁에 있는 게 제일 중요한 거 같다"고 강조했다. 두 사람은 사연 당첨자인 신혼부부에게 2001년 발매된 두 사람의 듀엣곡 '잊지 말기로 해'를 즉석에서 라이브로 들려줬다.
◇"잊히고 싶지 않아요" 이소라의 애틋한 진심 = 이소라는 최근 자신의 SNS를 통해 '매번 숨고 싶어 했던 자신을 끊임없이 무대 위로 불러내 준 팬들의 사연과 신청곡들로 세트리스트를 채워 고마움을 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공연도 팬들의 숱한 요청이 없었다면 성사되지 않았을 터. 이소라는 현장에서 무대 라이브 외에 길게 멘트를 하지 않았지만, 차분히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에 팬들에 대한 사랑과 진심을 가득 담아냈다.
공연 막바지 이소라는 "제가 좋아하는 건 같은 마음으로, 같은 생각으로, 같은 장소에 모여 있는 거예요. 싸울 일도 없고, 마음이 하나가 돼요"라며 "잊혀지고 싶지 않아요. 다음에 어딘가에서 제가 공연하게 되면, 저 보게 되면, 저 생각해 주세요. 아는 척해주세요"라고 뭉클한 소감을 전했다. 그는 "다음에 언제 만날지 모르니 이 곡만큼은 함께 불러 달라"며 앙코르 곡인 '청혼'을 부르며 공연의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