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잊혀진 백신 주권

김병준 바이오부 기자

김병준 바이오부 기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백신을 요청하던 상황을 모두 잊은 것 같습니다. 한국의 바이오 산업은 이제 시작 단계라는 점을 냉정하게 인지해야 합니다.”


제약·바이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정부의 정책 기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업계의 숙원이던 건축물 세액공제가 결국 좌초됐다. 정부는 세수 감소 등을 이유로 반대했다. 아쉽다는 반응이 곳곳에서 나왔다. 글로벌 기업을 추격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의 지원이 간절한 상황이다. 현재로서는 바이오 기업의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는 설비투자에 국한돼 있다. 세액공제 범위를 보다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에 수십만 명씩 나오던 상황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당시 누적 확진자는 2000만 명을 넘어섰다. 한국은 초기에 백신 확보에 실패했다. 미국의 화이자·모더나와 영국의 아스트라제네카는 백신 개발에 성공했다. 자국 상황이 우선순위가 되면서 우리 국민들이 접종할 백신은 없었다. 백신 주권의 개념이 급부상했고 바이오 산업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확산됐다.


한국도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성공했지만 이는 미완의 성공이다. 이미 국민 대다수가 자연 감염 등으로 면역이 된 후였다. 백신이 필요할 때 개발되지 못했다는 얘기다. 백신 개발 경험도 부족했고 백신 개발에 성공한 국가들에 비해 정부 지원도 부족했다. 여기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다음 팬데믹을 대비해 더 많은 경험을 쌓고 전폭적인 지원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코로나19로 떠오른 백신 주권은 점차 잊혀지고 있다. 정부는 “투자 세액공제를 하면서 토지와 건물 등 시설투자를 넣지 않은 것은 일관된 원칙”이라며 세수 감소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보건 안보 개념은 단순히 숫자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개발 과정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시행착오는 단순히 숫자로 가치를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백신 주권은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는 격언을 기억해야 할 때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