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0대 건설사의 올 한해 정비사업 수주액이 전년 대비 60% 감소한 10조 원대로 주저앉았다. 부동산 경기 둔화에 재개발·재건축 수요가 꺾이며 지방에서의 발주량 자체가 줄어든데다 높아진 공사비 부담에 건설사의 선별 수주 현상이 심화된 여파로 풀이된다.
12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달 11일까지 10대 건설사의 정비사업 수주 총액은 약 16조 원으로 전년(42조 원)대비 62% 감소했다. 같은 기간 수주 건수도 112건에서 50건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롯데건설은 지난해 4조 6368억 원에서 올해 5173건으로 88% 감소했다. 이어 대우건설(-80%), GS건설(-78%) 등의 순이다. 지난해 수주액 증가를 견인했던 부산과 대구, 대전 등 지방 정비사업 시공입찰이 대폭 감소한 게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또 이문·휘경뉴타운, 노량진뉴타운 등 서울의 굵직한 정비구역이 시공자 선정을 마친 것도 영향을 미쳤다.
건설사별 순위에도 지각변동이 생겼다. 포스코이앤씨는 수주액이 지난해 4조 5892억 원에서 올해 4조 4158억 원으로 6% 감소하는 데 그쳐 5위에서 1위로 순위가 껑충 뛰었다. 1기 신도시인 경기 안양시 평촌동에서 연이어 3000억 원 안팎의 리모델링 사업을 수주한 효과가 컸다. 반면 현대건설은 수주액이 3조 7613억 원에 그쳐 2위에 머물렀다. 이밖에 GS건설과 삼성물산, DL이앤씨가 1조 원대로 뒤를 이었다.
애초 건설업계는 지난 7월 서울시의 도시정비조례 개정에 따라 조합설립인가만 받으면 시공사를 선정할 수 있어 올 하반기 치열한 수주전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동작구 노량진1구역 재개발과 여의도 한양아파트 재건축 등 규모가 큰 사업장의 시공사 선정이 내년으로 밀리면서 수주실적이 예상보다 낮은 수준에 그쳤다.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 재건축 조합은 공사비 갈등에 지난달 GS건설과의 시공계약을 해지했다. 수주액은 3342억 원이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미분양이 많은 지방에서 정비사업 동력이 약해진 것도 타격이 컸다"고 말했다.
건설사가 '알짜 단지'를 위주로 선별 수주에 나선 것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 10월 건설공사비지수는 153.58로 3년 전인 2020년 10월(119.90)보다 28% 올랐다. 원가 부담은 커지는데 공사비 인상 허들은 높아지자 건설사들은 올해부터 수주 사업성 기준을 대폭 강화하고 나섰다. 여기에 해외 사업 강화와 최근 2년간 잇따른 정비사업 수주에 계약 잔액도 넉넉하다. 10대 건설사의 올 3분기 합산 수주잔액은 349조 원으로 전년 동기(306조 원)대비 13% 증가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당장 급할 것이 없는 것"이라며 "사업성이나 상징성이 있는 전략사업지를 중심으로만 수주에 관심을 둘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업계는 압구정 일대 노후 단지와 성수전략정비구역이 시공사 선정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하반기까지 수주 가뭄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주택 인허가와 착공 물량이 줄어든 가운데 건설사들의 옥석 가리기 현상은 향후 공급량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에 따르면 내년 재건축·재개발을 통합 입주물량은 1만 2000여 가구로 올해(2만 5000여 가구)대비 52%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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