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차전지 시장 규모가 2020년 524억 달러에서 2030년 3976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핵심 산업인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1240억 달러에서 2073억 달러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반도체보다 2차전지에서 보다 많은 기회를 찾아야 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13일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정부가 ‘2차전지 전주기 산업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한 것은 이런 배경에 따른 것이다. 2차전지를 키우기 위해 각종 금융·세제·규제 완화 방안이 총망라됐다.
정부는 우선 내년부터 수출입은행·산업은행·기업은행 등 6개 정책금융기관을 통해 2028년까지 38조 원 이상의 정책금융을 공급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수은의 법정자본금을 현 15조 원에서 30조 원으로 늘린다. 2차전지 투자 실탄을 마련하는 차원에서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대응 차원에서 북미에 시설을 투자하는 기업들에는 수은의 대출 한도를 최대 10%포인트 늘리고 금리도 최고 1.2%포인트 우대한다.
민간의 2차전지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약 2조 원 규모의 민·관 합동 펀드도 조성한다. 올해 말까지 1조 원 규모의 첨단전략산업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내년에는 산은과 기은 주도로 5000억 원 규모의 공급망 대응 펀드를 마련하고 2030년까지 유망 중소·중견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에 투자하는 2차전지 연구개발(R&D) 혁신 펀드도 2000억 원 규모로 운용할 방침이다.
해외 광물·소재 의존 문제를 풀기 위해 각종 대책을 마련한 것도 눈에 띈다. 실제 수산화리튬의 경우 물량의 84%(2021년 기준)를 중국에서, 탄산리튬에 대해서는 82%를 칠레에 의존하는 등 우리나라의 핵심 광물 특정국 의존도는 높은 수준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해외자원개발에 각종 인센티브를 마련했다. 당장 2024년부터 민간기업의 해외자원개발 투자액에 3%의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하기로 했다.
아울러 2차전지 핵심 소재 자급 향상을 위해 기업들이 2028년까지 양극재와 음극재 등 핵심 소재에 약 6조 6000억 원의 투자를 계획하는 상황에서 관련 투자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규제 혁신도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해외자원개발 융자도 내년부터 투자액의 30%에서 50%로 확대한다. 리튬 등 핵심 광물 정·제련 기술을 조세특례제한법상 신성장·원천 기술로 지정할지도 검토하기로 했다. 신성장·원천 기술에 포함되면 시설 투자에 대해 6~18%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사용 후 배터리 재제조·재사용·재활용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조성하기로 한 것도 2차전지 공급망 안정과 관련이 깊다. 정부는 모든 사용 후 배터리가 재활용되면 연간 전기차 17만 대 분량의 핵심 광물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현대·기아차의 연간 전기차 생산 규모(약 30만 대)의 절반을 웃도는 수준이다.
정부는 우선 재제조·재사용이 가능한 사용 후 배터리를 ‘폐기물’이 아닌 ‘제품’으로 인정할 수 있도록 관련 지원법을 내년 중 제정한다. 사용 후 배터리의 안정성 확보를 위해 성능 평가-유통 전 검사-사후 검사로 이어지는 3단계 안전 점검 체계도 구축한다. 2027년까지 제조·운행·순환 등 배터리 이용 주기 전반을 관리할 수 있는 정보 시스템도 마련할 방침이다. 사용 후 배터리를 활용한 전기차가 보급되면 전기차 가격도 이전보다 더 내려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관계자는 “최종 가격은 제조사가 정하는 것이지만 재제조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 가격은 새 제품과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2차전지 특허 우선심사도 도입한다. 이를 통해 현재 21개월이 소요되는 심사 기간을 10개월 수준으로 단축할 계획이다. 충북 청주 등 4개 지방자치단체에 건립 중인 2차전지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에 대해서는 내년 상반기까지 특화단지별 세부 육성 계획을 수립해 기업 지원에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