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국적 뿌반낍(Vu Van Giap)씨가 고용노동부의 외국인 근로자 고용제도인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온 건 2006년이다. 그는 전남 여수에서 배를 타고 낙지를 잡았다. 얼음처럼 차가워진 손과 사시나무처럼 떨던 몸을 잊지 못한다. 고국에 있는 할머니와 어머니를 생각하며 하루 하루 버텼다. 1년 후 통영에 있는 굴 양식 회사로 옮긴 후 고국으로 송급할 수 있는 월급이 늘었다. 이 월급으로 부모는 새 집을 짓고 동생은 공부할 수 있게 됐다. 베트남으로 돌아간 후 그는 기계 제품 생산회사를 차렸다. 한국에서 힘든 일을 떠올리면서 하루 2시간씩 자거나 밤을 새워 샘플을 만들었다. 직원 5명으로 출발한 이 회사는 5년 만에 직원 30명이 근무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그는 삼성, LG 등 한국의 대표 기업과도 거래를 트는 ‘사장님’이 됐다.
필리핀 국적 아본 도말라온(Avon Domalaon)씨가 필리핀에서 자신의 고향인 소르소곤시에서 부시장을 맡을 줄 한국에서 함께 일한 동료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2006년 부산에 있는 건설 사업장에서 일을 시작한 그는 매일 10시간 이상 쉬지 않았다고 한다. 인도네시아 국적 카스노(Kasno)는 한국에서 일했던 경험을 보답하는 길을 찾았다. 직장에 근무하면서 한국어 교육원에서 한국어 강의를 시작했다. 2018년에는 직접 한국어 학원도 차렸다. 그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란 말이 인생의 지혜 같다"며 “한국은 저의 꿈을 위해 많은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지난달 22일 고용부가 연 귀국근로자 초청 행사에서 소개된 일화들이다. 고용부는 귀국근로자에게 한국과 귀국 후 성공기를 공모전 형식으로 청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이 ‘한국에서 어려운 일을 한 데 대해 우리가 작은 보답이라도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제안한 행사라고 한다. 공모전 참가자들은 모두 가난을 이겨낼 수 있는 꿈을 위해 한국을 찾았고 한국인도 꺼리는 어렵고 힘든 일을 몇 년간 참고, 고국에서 제2 성공기를 써냈다. 마치 1970~1980년대 한국 근로자가 중동에서 꿈꿨던 ‘코리아드림’처럼 말이다.
하지만 코리아드림은 자칫 드림으로만 머물 수 있다는 우려도 많다. 정부는 내년 국내로 들어오는 외국인 근로자(체류자격 E-9) 규모를 역대 최대인 16만5000명으로 3년 만에 3배나 늘렸다. 모두 고용허가제를 통해서다. 고용허가제 행정능력을 더 보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제도는 단순히 외국 인력 규모를 정하는 게 아니라 인력 송출국과 협의·결정부터 국내 외국 인력 수요 파악· 배분, 외국 인력의 직업 훈련 및 정주 여건 관리, 고용 사업장 관리 및 교육까지 전체를 포괄한다. 정부 안팎에서는 현재 인력, 예산으로 내년 외국인 근로자를 제대로 보호할지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고용허가제란 정부 울타리 밖 근로자를 보호하는 일은 더 시급하다는 게 노동계의 지속된 요구다. 노동계는 외국인 근로자가 저임금, 악덕 사업주 횡포 등을 벗어나기 위해 불법체류자로 바뀌는 현실에 대한 제도 개선도 촉구한다. 법무부는 올해 3만8000여명의 불법체류자를 단속했다.
민주노총은 18일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을 맞아 17일 기념 대회를 연다. 민주노총은 대회 배경에 대해 “고용허가제의 사업장 변경 제한이 개선되지 않고 지역 이동 제한, 외국인노동자 지원센터 예산 삭감 등이 이뤄지고 있다"며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