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국내 행동주의 펀드들의 움직임이 본격화하자 환경·사회·지배구조(ESG)·사회책임투자(SRI) 펀드로 최근 한 달 새 1500억 원이 넘는 뭉칫돈이 유입됐다.
18일 금융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15일 기준 국내 ESG·SRI 펀드 설정액 규모는 6조 3468억 원으로 지난달 15일(6조 1887억 원) 대비 1581억 원 증가했다. SRI펀드는 이 기간 중 776억 원의 자금을 흡수했고 주식형 ESG 펀드와 채권형 ESG 펀드로는 각각 61억 원, 744억 원의 투자금이 유입됐다. 이는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같은 기간 1조 2928억 원 가량이 빠진 것과 상반된 흐름이다.
개별 펀드로는 한국투자신탁운용의 ‘한국투자크레딧포커스ESG펀드’에 273억 원의 신규 투자금이 유입됐다. 마이다스에셋운용의 ‘마이다스프레스티지책임투자채권’과 하이자산운용의 ‘하이ALL바른ESG채권’에 각각 198억 원, 72억 원의 투자금이 몰렸다. 이들은 모두 ESG 평가 요인을 투자 결정 지표로 삼고 있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의 ‘트러스톤ESG지배구조레벨업펀드’는 14억 원을 새로 흡수했다. 이 펀드는 ESG 점수가 낮더라도 지배구조 문제가 개선될 시 주가 상승을 기대할 수 있는 기업에 투자한다. 일감 몰아주기, 경영권 편법 승계, 인색한 주주 환원으로 주가가 저평가된 기업이 주요 대상이다.
ESG 펀드는 투자 기업을 선정할 때 매출과 이익 등 재무적 성과 외에도 사회적 책임, 친환경 정책 등 비재무적 요소를 함께 고려하는 펀드다. SRI 펀드는 ESG가 우수한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를 보다 폭넓게 지칭한다.
ESG·SRI 펀드는 올해 초 국내 증시에서 주주행동주의 바람이 불자 새로운 투자처로 부상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나타내는 듯했지만 이내 고금리와 높은 인플레이션 우려에 짓눌려 규모가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특히 지난 6월 15일부터 11월 15일까지 약 5개월 동안 ESG·SRI 펀드에서 9578억 원이 빠져나가는 등 부진을 면치 못했다.
최근 들어 ESG·SRI 펀드로 돈이 다시 유입되기 시작한 건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행동주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달 들어 화이트박스어드바이저스와 팰리서캐피털 등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들은 삼성물산(028260)을 상대로 자사주 매입과 이사회 다각화, 지주사 체제 개편, 주주환원 확대 등을 요구했다. KCGI운용은 최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등기이사와 이사회 의장직을 사임한 이후에도 경영구조 개선과 기업가치 정상화, 자사주 전량 소각 등을 지속적으로 요구 중이다. 최근에는 경영 참여형 사모펀드(PEF)인 MBK파트너스가 한국앤컴퍼니 공개매수에 나서면서 주주행동주의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투자 전문가들은 행동주의 펀드가 내년 존재감을 더욱 키우면서 ESG 펀드의 수익률도 되살아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상법상 주주제안은 주주총회 개최일 6주 전까지 서면으로 제출해야 하는 만큼 연말연초로 갈수록 행동주의 펀드의 움직임이 더욱 분주해져 ESG 펀드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오광영 신영증권 연구원은 “올해 국내 ESG 펀드는 차익 실현 목적의 환매가 늘면서 다소 부진한 흐름을 나타냈지만 내년부터는 다시 성장세로 돌아설 것으로 기대한다”며 “전세계 기관 투자가들이 탄소 저감 등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