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국의 취업 형태 구성이 동일하다고 가정하면 한국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근로시간 격차가 대폭 줄어든다는 분석이 나왔다. 근로시간이 상대적으로 긴 자영업자 등의 영향을 제외한 결과다. 노동시장 변화에 대응해 근로시간 선택권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19일 발표한 ‘OECD 연간 근로시간의 국가 간 비교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 취업자의 1인당 연평균 근로시간은 1901시간으로 OECD 38개 회원국 중 5위를 기록했다. OECD 평균치(1752시간)와 비교하면 149시간 많다. 김민섭 재정·사회정책연구부 연구위원은 “한국의 1인당 연간 근로시간은 빠른 감소 추세에 있지만 여전히 다른 국가에 비해 상당히 긴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단 자영업자, 전일·시간제 근로자 등 취업형태 구성에 따른 영향을 빼면 근로시간 격차는 30% 넘게 감소한다. KDI가 OECD 국가의 자영업자 및 시간제 근로자 비중이 동일하다는 가정 하에 근로시간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21년 기준 한국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기존 1910시간에서 1829시간으로 81시간 줄었다. 반면 분석 대상이 된 OECD 30개국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기존 1646시간에서 1648시간으로 2시간 늘었다. 이에 한국과 OECD 30개국 간 연평균 근로시간 격차도 기존 264시간에서 181시간으로 약 31%(83시간) 줄었다.
KDI는 각국의 자영업자 및 시간제 근로자 비중이 연평균 근로시간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봤다. 실제 KDI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1%포인트 늘어나면 연평균 근로시간이 약 10.2시간 증가한다. 이와 달리 시간제 근로자 비중이 1%포인트 증가하면 연평균 근로시간은 약 8.6시간 감소한다. 김 연구위원은 “한국의 1인당 연간 근로시간은 취업형태 구성으로 인해 비교적 길게 나타난 것”이라며 “독일과 네덜란드는 자영업자 비중이 작거나 시간제 근로자의 비중이 큰 덕분에 연간 근로시간이 짧게 나타나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취업형태 변화는 최근 한국의 근로시간 감소세에도 영향을 미쳤다. 구체적으로 KDI는 2010년부터 2021년까지 11년간 줄어든 한국의 연평균 근로시간 감소분 253시간 중 20%(약 50시간)는 자영업자 비중 감소에 따른 결과로 분석했다. 또 시간제 근로자 비중 변화는 최근 11년간 한국의 연평균 근로시간 감소분 중 13%(약 33시간)에 영향을 미쳤다. 김 연구위원은 “자영업자 비중 감소 추세는 지속적으로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을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해 왔다”며 “2010년과 2021년 사이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 감소분 중 약 33%가 취업형태 구성 변화에 의한 것”이라고 했다.
물론 자영업자 등 변수를 조정해도 한국의 근로시간은 상대적으로 길다는 지적이다. KDI가 “불합리한 임금 체계나 경직적 노동시장 규제 등이 비생산적인 장시간 근로 관행을 초래하는 측면은 없는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제언한 이유다.
KDI는 유연근무제 등 근로시간 선택권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일제 근로 중심의 노동시장 환경에서는 다양한 계층의 고용 기회를 보장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김 연구위원은 “‘전일제 근로 아니면 구직 포기’라는 이분법적 노동시장 여건 하에서는 유자녀 근로자 등 시간 제약이 큰 계층의 노동시장 참여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이는 유자녀 근로자의 경력 단절과 저출산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임금 등 일자리 조건이 적절히 설정된다면 자녀 육아기의 부모, 정규직에서 물러난 고령층 등 유연근무에 대한 잠재적 수요는 적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