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가스료 억눌러 물가 통제했지만…'라스트마일' 쉽지 않을 것"

■ 이창용 "내년 말에나 물가 2%"
유가 등 원자재값 불확실성이 변수
3.3%서 1.3%P 줄이기 더 힘들어
국내 통화정책 '운신의 폭'은 커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0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2023년 하반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금리 인하 논의를 시작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달리 한국은행이 인플레이션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것은 국제유가 움직임과 전기·도시가스요금 인상 가능성 등 불확실성이 남았기 때문이다. 내년 말이나 내후년 초에 물가가 목표 수준인 2%에 근접하겠으나 1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 3.3%에서 남은 1.3%포인트를 줄이는 라스트마일(마지막 걸음·last mile)까지 장애물이 많다는 것이다.


가장 큰 변수는 국제유가의 움직임이다. 국제유가는 글로벌 수요 둔화와 비(非)석유수출국기구(OPEC) 산유국 증산 등이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는 가운데 OPEC+ 감산 지속과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불안 등 상방 리스크가 혼재돼 예측하기 어려운 상태다. 내년 국제유가(브렌트유 기준)에 대한 글로벌 투자은행(IB)의 평균 전망치는 배럴당 84.5달러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85.0달러로 예상한다. 19일 브렌트유가 배럴당 79.23달러를 기록한 만큼 내년 중 추가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 셈이다. 다만 팬데믹 이후 각 기관의 국제유가 전망이 번번이 빗나가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김웅 한은 부총재보는 “최근 국제유가가 다시 반등하고 미국 통화정책에 대한 시장 기대 변동성이 상당히 크게 나타나고 있다”며 “현재로서는 내년 말이나 내후년 초에 물가가 2%로 수렴할 것으로 보고 있으나 향후 여건 변화를 보고 다시 전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 정책도 국내 물가 불안 요인으로 꼽힌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전기·도시가스요금 인상 폭을 제한하고 유류세를 인하하면서 물가를 눌러왔다. 그런데 향후 요금이 다시 오르거나 유류세 인하 조치가 환원될 경우 인플레이션 둔화 흐름이 더뎌질 수 있다. 대중교통요금도 수도권 등 일부 지역에서 내년 중 추가 인상을 예고하는 등 추가 상승이 예상된다. 내년 4월에 총선이 있는 것도 불확실성을 높인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해 물가를 관리했기 때문에 그만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다른 나라에 비해 덜 올랐다”며 “다만 세상에 공짜가 없는 것처럼 이를 되돌리는 과정에서 물가가 떨어지는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했다.


반면 민간소비 등 내수 측면에서 물가 압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봤다. 고용 상황이 양호해 가계의 실질 구매력이 점차 개선되겠으나 통화 긴축 여파로 민간소비 회복세가 제약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은은 내년 성장률을 2.1%로 예상하고 있으나 반도체 등 정보통신기술(IT) 분야를 제외하면 1.7%에 그친다. 그만큼 수출을 제외한 소비 등 다른 부문은 올해보다 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는 “내년 중 피부로 느끼는 경제 회복 정도가 다를 수 있다”며 “고통을 받는 섹터가 많고 취약 계층을 겨냥한 부양책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결국 한국은 근원물가 상승률이 2.9%로 미국(4.0%)보다 1%포인트 이상 낮더라도 금리 인하 논의를 시작하는 시기는 더 늦춰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현재 두 나라의 근원물가 상승률이 크게 벌어져 있으나 내년 말이면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신 미 연준이 금리 인상을 확실하게 멈춘 만큼 앞으로는 국내 상황에 집중하면서 통화정책을 운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 총재는 “유가 등 원자재 가격 향후 추이와 관련한 불확실성이 큰 가운데 누적된 비용 인상 압력 영향이 지속되고 노동비용도 여전히 높다”며 “이를 감안할 때 인플레이션을 목표 수준으로 되돌리기 위한 ‘라스트마일’은 쉽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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