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선거제 개편의 악몽

오철수 선임기자
소수당배려 명분 내세운 준연동형
되레 거대 양당 쏠림심화만 초래
위성정당 난립 파행 막기 위해선
권역별 병립형 등 대안모색 필요

오철수 선임기자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채 4개월도 남지 않았던 2019년 12월 27일.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온갖 무리수를 동원해가며 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비례 의석수를 지역구 의석과 연동해 배분하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기 위해서였다. 민주당은 제1야당이었던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을 배제하고 정의당·대안신당 등 군소 정당들을 규합해 힘으로 밀어붙였다. 이 과정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거세게 저항하면서 동물 국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국회 본회의장은 그야말로 난장판이 됐다. ‘게임의 룰’인 선거법을 제1야당을 배제한 상태에서 통과시킨 것은 헌정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비례 의석수를 더 차지하기 위해 위성정당의 난립을 초래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괴물은 이렇게 탄생했다.


이때 민주당이 선거법 개정안을 처리하면서 내세운 명분은 소수 정당들도 일정한 득표율을 얻으면 의석을 확보하게 해 국회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21대 국회에서 이 같은 입법 목적은 달성됐을까. 모두가 다 아는 것처럼 입법 취지와는 정반대의 결과가 초래됐다. 미래통합당으로 간판을 바꿔 단 제1야당은 물론이고 민주당까지 비례대표 의석 획득을 위한 위성정당을 만들면서 두 거대 정당으로의 의석수 쏠림 현상은 이전보다 훨씬 더 심해졌다. 선거 결과 민주당은 위성정당을 통해 확보한 비례 의석을 포함해 모두 180석을 얻었고 미래통합당은 103석을 차지했다. 양당의 의석수 합계는 283석으로 전체 국회의원 정수의 94.3%에 달했다. 이는 20대 국회의 양당 점유율(81.66%)보다 무려 12.64%포인트나 높아진 것이다. 이전에 치러진 다섯 차례 선거의 양당 평균 점유율(87%)보다도 7%포인트 이상 높다. 소수 정당을 배려하자는 명분을 내세워 온갖 무리수를 동원해 선거제도를 바꿨지만 오히려 소수 정당을 위축시키는 결과만 가져온 것이다.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불과 3개월여 앞두고 현행 선거법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되자 민주당도 신경이 쓰이는 눈치다. 이 때문에 선거제도 개편에 대해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좀처럼 의견 통일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예전처럼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돌아가자”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준연동형을 유지해야 한다” 목소리도 나온다. 일부에서는 위성정당방지법을 만들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문제는 위성정당방지법이 소수 정당에 별로 도움이 되는 제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김상희 의원 등 민주당 의원 75명이 발의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이 법안은 지역구 후보자 추천 비율의 20%만큼을 비례대표로 추천하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비례대표 후보 10명을 내려면 지역구 후보 50명을 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소수 정당에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소수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도입된 조항이 소수 정당의 진입장벽을 되레 높이게 되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1·2당의 위성정당 방지에 초점을 두고 급하게 법안을 만들다 보니 이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더군다나 위성정당 금지는 정당 설립을 제한하는 측면이 있어서 위헌 소지도 다분하다.


민주당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실험은 완전히 실패했다. 소수 정당의 의석 확보는커녕 거대 양당의 의석 쏠림만 더 심해졌다. 이런 모순투성이의 제도를 가지고 또다시 선거를 치른다면 문제만 더 커질 뿐이다. 이제 다른 방향에서 대안을 모색해볼 때가 됐다. 다행스러운 점은 최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여야 간사 간에 지역구는 소선거구제를 그대로 두고 비례대표제를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바꾸자는 데 대해 어느 정도 공감대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병립형 비례대표제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위성정당이 난립하는 현행 제도보다는 낫다. 이 세상에 그 어떤 제도도 완벽한 것은 없다. 조금이라도 부작용이 덜한 제도를 골라야 한다. 이제 총선까지는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여야는 정치공학적 접근에서 벗어나 우리나라 정치 발전을 위한 대안을 하루속히 모색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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