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을’로 불리는 ASML이 차세대 반도체 제조 장비 ‘하이 뉴메리컬어퍼처(NA) 극자외선(EUV)’을 인텔에 납품하기 시작했다. 하이 NA EUV는 2나노 미만 초미세 반도체 제조의 필수 장비로 ASML이 독점 생산한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복귀를 천명한 인텔이 차세대 장비를 우선 확보하며 2025년에야 하이 NA EUV를 납품받을 삼성전자·TSMC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21일(현지 시간) ASML은 첫 하이 NA EUV 장비를 인텔에 공급했다고 밝혔다. 블룸버그는 “장비가 미국 오리건주의 인텔 D1X 공장으로 배송됐다”고 전했다. 앞서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하이 NA EUV 최초 납품처가 인텔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이 NA EUV는 반도체 파운드리 업계의 ‘게임체인저’로 불린다. 기존 EUV보다 한층 더 미세한 파장을 지녀 현재 미세공정 ‘마의 벽’인 2나노를 뚫는 데 필수적이다. 인텔에 납품된 첫 제품의 가격은 약 2억 5000만 유로(약 3600억 원), 2세대 장비는 3억 5000만 유로(약 5000억 원)를 넘어서는 초고가로 추정되지만 삼성전자와 TSMC를 비롯한 모든 반도체 파운드리가 구매를 위해 줄을 서는 형편이다.
최근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이 네덜란드 출장길에 오른 것 또한 ASML의 하이 NA EUV 때문이다. 경 사장은 이달 15일 귀국한 후 “삼성이 하이 NA EUV 노광장비에 대한 기술적 우선권을 갖게 됐다”며 만족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ASML에 ‘후순위’다. 인텔은 최초 생산되는 하이 NA EUV 6대를 우선적으로 제공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텔이 6대를 인도받은 후 삼성전자·SK하이닉스·TSMC가 순차적으로 장비를 제공받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 추세대로라면 인텔은 2025년 초에야 마지막 장비를 인도받게 돼 삼성전자가 하이 NA EUV를 확보하는 시점은 2025년 중순이 될 가능성이 높다.
TSMC에 밀려 파운드리 시장점유율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삼성전자에 인텔이라는 복병이 등장한 셈이다. 인텔은 아직 파운드리에 본격적으로 복귀하지 않았으나 자체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생산하며 빠른 속도로 초미세공정에 진입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파운드리 회계를 분리하고 본격적인 외부 수주에도 나설 계획이다. 삼성전자와 TSMC가 2025년 2나노 공정 진입을 목표로 내세운 가운데 인텔은 2024년 2나노에 진입하고 2025년에는 1.8나노를 선보이겠다는 공격적인 사업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