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는 영변의 새로운 핵시설 가동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북한 평안북도 영변 핵시설 내 실험용 경수로(LWR) 인근에서 활동 증가와 온수 배출이 관측돼 이 경수로가 처음으로 가동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고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지난 12월 21일(현지시간) 밝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라파엘 그로시 사무총장은 이날 오스트리아 빈에서 개막한 정기 이사회에서 발표한 성명에서 “지난 10월 중순 이후 북한 영변의 더 큰 경수로에서 활동이 증가했으며, 냉각기에선 다량의 물이 배출되는 것을 관측했다”며 “이는 이 경수로가 시운전 되고 있음을 뒷받침한다”고 밝혔다.
이는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이 가동되는 것으로, 이를 통해 핵탄두 증산에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온수 배출은 이 경수로가 임계 상태(criticality)에 도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실험용 경수로에서 온수가 배출됐다는 것은 북한이 이미 가동 중이던 영변의 5MW 원자로에 더해 더 큰 경수로가 작동을 시작했다는 징후로 해석된다.
북한은 수년 동안 핵무기 제조를 위한 플루토늄을 생산하기 위해 영변에 있는 5WM 원자로에서 사용 연료를 재처리해 왔던 전례가 있다. 영변의 5WM 원자로는 북한의 핵무기 제작과 관련된 핵심 시설로, 여기에서 가동 후 나오는 폐연료봉을 재처리하면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 추출이 가능하다.
북한의 영변 경수로 시험 가동 정황이 포착된 가운데 미국의 핵 전문가들은 영변 경수로가 완전 가동되면 북한의 플루토늄 생산 능력은 종전보다 4~5배 증가해 핵무기 생산 능력이 크게 늘 것으로 전망했다. 기존 무기급 우라늄과 결합하면 매년 10개의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을 지낸 올리 하이노넨 스팀슨센터 특별연구원은 북한이 영변 경수로를 가동할 경우 “이론상 연간 약 15~20킬로그램의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며 “기존 5메가와트(MW) 원자로보다 3~4배 더 많은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 양으로, 생산 능력이 크게 증가하게 된다”고 말했다.
하이노넨 특별연구원은 또 “핵무기 한 개에 필요한 플루토늄의 양을 4킬로그램이라고 가정할 경우, 1년에 15킬로그램을 생산하면 1년에 4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면서 “이는 엄청나게 늘어난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북한 영변 핵시설에서 이 지난 10월 중순 이후 경수로 냉각 시스템에서 배수가 관측됐다고 밝혔다.
북한의 영변 핵단지에는 흑연 감속로 방식의 5MW(e) 실험용 원자로가 있지만, 북한이 추가 건설한 실험용 경수로는 발전용량이 30MW로 추정된다. 이 원자로를 가동할 경우 그만큼 더 많은 핵탄두 제조용 핵물질을 생산해낼 수 있다는 의미로 국제사회의 우려가 높은 이유다.
그로시 총장은 “최신 관측에 따르면 배출된 수분은 따뜻한 상태로 보이며 이는 새 원자로를 시운전할 때 진행하는 ’커미셔닝’ 단계와 일치하는 징후”라며 “이는 원자로 활동이 임계 상태(핵 연쇄 반응이 자체 지속하는 상태)에 접어들었다는 의미”라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실험용 경수로도 다른 원자로와 마찬가지로 방사성 핵연료에서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으며 이는 재처리 과정에서 분리될 수 있기 때문에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영변 핵시설 내 실험용 경수로는 북한이 핵탄두 제조에 쓸 핵물질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시설이라고 의심받아왔다. 이 경수로가 머지않아 작동 상태로 전환할 것이라는 전망이 그동안 빈번하게 제기됐는데 이번에 공식적으로 IAEA가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IAEA는 2009년 4월 추방된 이후 북한 핵 시설에 직접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주로 위성사진을 통해 북핵 프로그램을 감시해 왔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지속하는 것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대한 명백한 위반으로 매우 유감스럽다”며 “북한이 안보리 결의에 따른 의무를 준수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 협정의 효과적인 이행을 위해 IAEA와 신속히 협력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미 캘리포니아 소재 ‘제임스마틴 비확산연구센터(CNS)’는 최근 북한의 새 원자로가 작동되고 있는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핵물질의 중요한 공급원”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또 워싱턴DC의 과학국제안보연구소도 올해 4월 보고서에서 “연간 약 20kg의 생산량으로 북한의 플루토늄 양을 급증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연구소의 추정에 따르면 연료의 사용량에 따라 북한은 31개에서 최대 96개의 핵탄두를 보유할 수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올해 초 국방부가 발간한 국방백서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북한은 핵연료 재처리를 통해 플루토늄 최소 70여㎏을 생산했다. 고농축우라늄(HEU)도 상당량 보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하이노넨 특별연구원은 이 실험용 경수로가 실제 완전 가동에 들어가려면 적어도 6개월에서 1년 정도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북한이 원하는 핵무기 제조 물질인 플루토늄을 생산하려면 원자로 테스트와 출력 조절, 원자로 안전 작동 등 몇 가지 심층 테스트를 거치는 등 준비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기간에 약간의 플루토늄을 생산하겠지만, 본격적인 생산에는 좀 더 시간이 소요될 것이란 설명이다. 따라서 이 같은 절차가 끝나고 나면 전 세계가 우려하는 북한의 7차 핵실험도 내년 6월 전후로 가능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이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 생산량을 크게 늘릴 수 있는 영변 핵단지 내 실험용 경수로(ELWR)를 십수 년 만에 완공해 시운전에 들어간 정황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공개되면서 한미 당국이 우려하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지난 12월 24일 “정부는 한미간 긴밀한 공조를 바탕으로 북한 핵시설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지난 21일 실험용 경수로 시운전 정황에 대한 IAEA 사무총장 언급에도 주목한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은 안보리 결의에 위반해 핵물질 생산 활동을 계속하고 있으며, 작년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핵탄두를 기하급수적으로 증대하겠다고 밝히고 탄도미사일 도발을 지속하는 등 한반도와 전세계 평화·안정을 해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국무부도 이날 영변 경수로 시운전 정황에 대한 “안전을 포함해 심각한 우려를 불러일으킨다”며 “북한의 불법적인 핵 및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은 국제 평화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2010년께부터 영변에 실험용 경수로를 건설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애초 북한이 공언한 완공 시점인 2012년을 훌쩍 넘겨 건설이 장기화했지만, 최근 들어 마침내 작동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전문가 분석이 잇따라 제기됐다.
영변 핵시설 가동은 결국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지시한 핵탄두 보유량 ‘기하급수적’ 증대를 뒷받침할 또 하나의 기반이 될 수 있다. 북한은 플루토늄 외에도 무기급 핵물질 확보를 위한 또 다른 수단으로 영변 등에 우라늄 농축시설을 가동 중이다. 다만 실험용 경수로가 완전 가동에 들어가는 데는 시간이 더 걸릴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