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 한파가 매섭다. 몸과 마음이 움츠러드는 매년 이맘때면 거리에 ‘딸랑딸랑’ 종소리와 함께 구세군 자선냄비가 등장한다.
1860년 영국에서 시작된 구세군은 난파선 생존자들을 구하기 위해 부둣가에 냄비를 걸어두고 돈을 모금했다. 이 자선냄비가 오늘날 구세군의 상징이 됐다. 우리나라에는 1908년 영국 선교사로부터 구세군이 들어왔는데 이제는 그 자선냄비가 연말연시 불우한 이웃을 돕는 익숙한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 구세군은 올해 전국적으로 125억 원을 목표로 350여 곳에서 모금 활동을 펼치고 있다. 유동 인구가 많은 거리에서 땡그랑 종소리가 울리면 어렵지 않게 구세군 자선냄비를 찾아볼 수 있다.
모금 방식도 다양하다. 갈 길을 멈추고 주머니 속 동전과 지폐를 꺼내 넣는 시민부터 집에서 준비해온 저금통을 털어서 넣는 시민들까지 각자의 방식으로 온정을 나눈다. 최근에는 현금 소지자가 줄어든 상황을 반영해 QR코드 인식이나 교통카드 태그로도 자선냄비에 기부가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불우 이웃을 위한 각종 모금 운동에 대한 참여가 저조하다고 한다. 고물가와 경기 침체의 영향, 모금 단체의 자금 투명성에 대한 불신 등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기부를 했다는 사람의 비중은 23.7%로 10년 전 34.6%에 비해 10.9%포인트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1인당 평균 기부액도 2021년 60만 3000원에서 올해 58만 9800원으로 줄어들었다. 기부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 ‘경제적 여유가 없다(46.5%)’를 꼽았고 ‘기부에 관심이 없다(35.2%)’와 ‘기부 단체를 신뢰할 수 없다(10.9%)’가 그 뒤를 이었다.
경제적 불황에 의한 기부 감소가 아닌 기부 단체에 대한 불신이나 무관심은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제다. 기부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투명성 제고는 오랜 과제다. 구세군의 경우 자선냄비 성금은 모금이 되면 봉인된 상태로 관리되고 해마다 행정안전부와 공식 회계법인 감사를 받으며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다. 모금된 성금도 구체적 기준에 따라 필요한 곳에 분배되고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국내 기부 단체들이 기부받은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투명하게 공개하고 자신들의 기부가 어떻게 도움이 됐는지 소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기부금이 우리 사회에 어떠한 변화를 이끌었는지 추적해 기부자에게 전달하는 모습도 보여줘야 한다. 아울러 기부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도 필요하다.
혹한의 추위 속에 기부가 줄고 고유가와 고물가까지 겹치면서 기부금을 받는 단체뿐 아니라 후원금으로 운영비를 충당해야 하는 지역아동센터나 장애인복지관 등의 어려움도 커지고 있다. 거리에서 울려 퍼지는 자선냄비의 종소리가 이웃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온정을 나누는 길 위의 희망이 될 수 있도록 침체된 기부 문화를 활성화하는 데 우리 사회가 함께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