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암호화폐 범죄 조직, '현대판 노예' 동원해 조직적 사기

사기 액수 3조7000억원…3년 전 대비 3배 증가

미얀마서 체포된 온라인사기 범죄조직원들. 사진=AP·연합뉴스

미얀마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현대판 노예제를 운영하며 미국 등 전 세계 사람들의 돈을 가로채는 중국 범죄 조직의 사기 실태를 CNN방송이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유엔과 미 연방수사국(FBI)에 따르면 이들 범죄 조직은 기술 발전과 내전 등 동남아시아의 불안정한 상황을 악용해 수십억 달러 규모의 범죄 산업을 구축했다.


조직원들은 젊은 여성을 가장해 피해자에게 접근하고, 몇 주간 친해진 다음 가짜 암호화폐 플랫폼에 투자하도록 꼬드긴다.


처음엔 높은 수익률을 보여주며 계속 돈을 투자하도록 하는데, 결국 투자금은 사기꾼과 함께 사라져 버린다.


피해자를 속이는 과정이 도축 전 돼지의 살을 천천히 찌우는 것과 닮은 까닭에 이런 범죄 수법은 '돼지 도축 사기'라고도 불린다.


FBI에 따르면 2020년 9억700만달러(약 1조1000억원)였던 이 사기 범죄의 규모가 올해 들어서는 11월까지 29억달러(약 3조7000억원)로 3배나 늘었다.


제임스 버나클 FBI 돈세탁 전담반 국장은 '사기 서비스의 전문화'라며 더 많은 미국인과 전 세계인들이 여기에 넘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피해자를 속인 사기꾼은 젊은 여성이 아니라, 인신매매돼 수용소에 갇힌 현대판 노예들이다.


조직적인 범죄를 위해 중국 범죄단은 미얀마 동부 등지에 거대한 건물을 지어놓고 '일자리를 주겠다'는 말로 수천명을 꼬드겨 이곳에 가뒀다. 범죄단은 그 후 이들에게 암호화폐로 수백만 달러를 훔치도록 윽박지르고 있다고 CNN은 전했다.


유엔은 미얀마 전역에 12만명, 캄보디아 등 다른 지역에 10만명이 갇혀 사기 행각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추정한다.


인도 출신의 라케시(가명·33)도 피해자 중 한 명이었다. 화학 엔지니어였던 그는 IT 기업에서 사무직 일자리를 준다는 말에 지난해 12월 태국 방콕에 왔다.


그러나 공항에서 그를 태운 운전기사는 방콕의 사무실 대신 태국과 미얀마의 국경 매솟시로 데려갔다.


3m 담장과 감시탑이 있는 미얀마 내 건물로 끌려간 그는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여권을 압수당하고 전문 사기꾼이 된다는 내용의 계약서에 서명할 것을 강요당했다.


라케시는 한 중국 남성이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을 죽이겠다"는 협박을 했다고 CNN에 전했다.


계약서에 서명을 거부하자 감옥 같은 곳에 던져져 음식이나 물도 제공받지 못했다. 그곳에서 사흘이 지난 뒤 라케시는 살아남기 위해 계약서에 서명했다.


조직원들은 그를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 사는 아름다운 금발머리 투자자 '클라라 세모노프'로 위장시켰다.


라케시는 하루에 16시간씩 잠재적 피해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이들의 신뢰를 얻으려 했다. 그의 임무는 미국인, 영국인, 브라질인, 멕시코인들이 깨어 있는 시간에 계속 이들과 연락하는 것이었다.


이후 피해자들이 투자할 준비가 되면 연락망을 팀장 등에게 넘겼다.


라케시는 "(잠재적 피해자의) 70~80%는 가짜 사랑에 빠진다"고 전했다.


라케시는 자신이 일했던 사기단의 거대한 건물 내부에는 식당과 식료품점, 심지어 어린이집도 갖춰져 있으며 성매매와 마약 투약도 이뤄지고 있었다고 전했다.


충분한 수의 피해자를 속이지 못한 사람은 스쾃이나 팔굽혀펴기 수백회 등의 처벌을 받거나 전기 막대기로 맞기도 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CNN은 중국 범죄 조직이 미얀마 내전 등의 상황을 악용해 이 같은 초국가적인 사기 행각을 벌였다고 분석했다.


미얀마는 2021년 2월 군부 쿠데타 이후 치안이 악화하고, 외곽 지역에서는 온라인 사기뿐 아니라 마약 밀매 조직이 활개 치는 등 극심한 혼란에 빠져있다.


전 세계 국가들이 이 같은 사기와 인신매매 피해자들을 도우려 하고 있지만, 미얀마 군정은 인신매매를 막기 위해 거의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고 CNN은 지적했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의 제레미 더글러스 아시아태평양 지역국장은 "무장 단체들은 수익의 일부를 받는 대가로 (범죄조직에게) 땅과 보호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