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난·中추격에 '금기' 깬 결단…K조선 협업 더 깊어진다

■한화오션, 삼성重에 블록 공급…K조선 원팀
중국산 블록 하청 대거 늘려왔지만
中 친환경선박 수주확대 따돌리고
물류비 절감·건조기간 단축 위해
국내 대형조선사 협력 시너지 확대


삼성중공업이 한화오션으로부터 선박 블록을 공급받게 된 것은 조선 업계의 극심한 인력난 속에 대규모 수주 물량의 납기를 맞추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풀이된다.


두 기업은 선박 블록을 국내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대거 들여오고 있지만 양 사 모두 거제에 조선소를 두고 있어 물류비 절감과 운송 시간에 따른 건조 기간 단축 등의 효과가 있다. 삼성중공업 입장에서는 대규모 수주 물량을 한 번에 건조할 준비를 하고 있는 만큼 블록을 제때 조달하기 불가능해지는 데 대비하기 위한 포석도 있다. 삼성중공업은 최근 1만 6000TEU급의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 16척을 수주했다.


조선 업계의 한 관계자는 29일 “조선사들은 자사 조선소 내에서 모든 블록을 직접 제작해 선박을 조립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며 “경쟁사로부터 블록을 공급받는 것은 인력 혹은 생산 설비 부족 등의 문제가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특히 블록 공급은 기존의 금기를 깨는 파격적인 결정인데, 아마 최고경영자(CEO)들의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라면서 “쌓여가는 수주 물량, 인력난, 중국의 추격 따돌림 등 여러 난제를 일부 해소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영국 조선 해운 시황 전문 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삼성중공업은 지난달 기준 글로벌 단일 조선소 가운데 수주 잔량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과 비교할 때 블록의 품질 차이도 삼성중공업과 한화오션이 손잡은 요인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중국의 블록 하청 협력 업체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경계하는 분위기도 있다. 삼성중공업 역시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 수주와 관련해 초기에는 중국의 블록 제작 업체와 공급계약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품질 문제 등을 우려했다는 전언도 있다.


김용환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중국의 상선용 블록 제조 업체는 90% 이상을 일일근로자들이 만들고 있는데 한국에 비해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라며 “선주들 입장에서도 블록의 퀄리티를 꼼꼼히 따지기 때문에 조선사들도 상당히 민감하다”고 말했다.


한화오션은 상대적으로 블록에 여유가 있다. 한화오션은 올해 신중한 모습을 보이며 10척의 상선만 수주한 덕분에 수주 잔량이 지난해 117척에서 올해 102척으로 소폭 줄었다. 한화오션은 아직까지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을 제작한 적이 없다. 다만 약 6000억 원을 투자해 메탄올·암모니아 등 ‘친환경 추진 시스템’ 개발에 적극적인 만큼 관련 블록을 제작하는 데도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삼성중공업 거제 조선소.

업계에서는 이번 계약을 시작으로 삼성중공업과 한화오션 간의 협업이 더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두 회사는 여러 계열사를 보유한 HD한국조선해양과 비교해 규모가 더 작은 만큼 힘을 합칠 경우 ‘시너지 효과’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업계에서는 두 회사가 포스코와 현대제철·동국제강 등으로부터 후판·기자재 공동구매를 통해 △경비 절감 △가격 경쟁력 향상 등의 다양한 방안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블록 공급 등의 계약을 시작으로 양 사가 앞으로 공동 연합전선을 꾸릴 필요가 있다”며 “대한민국 조선 업계가 최근 치고 올라오는 중국 기업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도 좋은 선택일 것”이라고 말했다. 협력의 폭이 더 넓고 깊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중국 조선사들의 수주 경쟁력은 커지고 있다. 전 세계 상선 발주 가운데 국내 조선사가 차지하는 비중(CGT 기준)은 최근 4년간 32~34% 수준을 유지했지만 올해는 25%까지 떨어졌다. 2019년 36%에 불과했던 중국의 조선 수주 비중은 2020년 44%, 2021년·2022년 50%, 올해는 58%까지 올랐다.


이뿐만이 아니다. 중국은 친환경선에서도 매섭게 추격하고 있다. 세계 발주량이 지난해 32척에서 올해 72척으로 급격히 늘어난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 시장의 경우 아직은 42척을 국내 조선사가 수주하며 과반을 차지했다. 하지만 덴마크 선사 머스크의 10억 달러(약 1조 3000억 원) 규모의 3500TEU 메탄올 이중 연료 컨테이너선(15척)은 중국의 황푸원충조선이 가져갔다.


업계의 또 다른 고위 관계자는 “친환경 선박에서도 중국의 추격이 매섭다”면서 “결국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국내 조선 업체들 간 협업을 통해 이를 돌파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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