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금리 인하를 예상하고 미국 장기채에 ‘한 방’ 베팅했던 서학개미(해외 주식 투자자)가 최대 14%대 손실을 입었다. 해외 주식 투자자는 올 한 해 미국채 20년물을 기초자산으로 삼은 상장지수펀드(ETF)를 말 그대로 쓸어담았다. 해외 주식 순매수액 상위 1~3위를 미국 장기채 ETF가 차지했다. 문제는 수익률이다. 올 한해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25% 넘게 올랐지만, 서학개미가 사들인 장기채 ETF 중 가장 높은 수익률은 고작해야 2%에 불과했다.
31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 들어 이달 22일까지 해외 주식 투자자의 순매수액 상위 3대 종목은 모두 미국채 20년물을 기초자산으로 삼고 있다. 1위는 미국채 20년 3배 레버리지 ETF(티커 TMF)로 순매수액만 11억 1141만 달러(약 1조 4393억 원)에 달한다. 일본 증시에 상장된 아이셰어즈 20년 미국채 ETF(4억 4078만 달러)와 미국채 20년물 가격을 그대로 추종하는 아이셰어즈 미 국채 20년 ETF(TLT·3억 8774만 달러)가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기초자산은 미국채 20년물로 같지만 수익률은 제각각이다. TMF는 22일 63.9달러로 지난해 말(74.24달러) 대비 13.9% 하락해 있고 아이셰어즈 20년 미국채 ETF도 5.8% 손실 중이다. 반면 TLT는 2.3%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해외 주식 투자자들은 올 상반기 금리 정점론이 확산하면서 가까운 시일 내 금리 인하(채권 가격 상승)를 기대하고 미국 장기채 투자에 나섰다. 일부 투자자는 고수익을 노리고 3배 레버리지 상품(TMF)이나 저평가된 엔화 가치의 반등을 기대하고 엔화로 헤지된 아이셰어즈 20년 미국채 ETF를 대거 사들였다.
투자자들의 예측과 달리 미국채 10년물 금리는 지정학적 리스크와 미국 재정적자, 미국 채권 수요 부족 등 악재가 겹쳐 6월 말 3.82%에서 10월 중순에 4.99%까지 치솟았다. 미국 장기채 가격이 급락했고 3배 레버리지 상품인 TMF 투자자의 손실은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됐다. 엔화 가치도 시장 예상보다 하락 폭이 더 커져 엔화로 헤지된 아이셰어즈 20년 미국채 ETF도 현재까지 손실을 보고 있다. 최유준 신한투자증권 연구원 “지난해 말 엔·달러 환율이 130엔대에서 이달 140엔 선으로 약 8% 환차손 구간에 있다”고 설명했다.
증권가에서는 미국채 ETF의 수익률이 제한된 수준에서 움직일 것으로 봤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내년 미국 경제는 안정적인 가계부채 관리, 산업 투자 증가에 침체 가능성이 낮다”며 “현재 3.9%대인 미국채 10년물 금리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여 미국채 ETF 가격도 제한적 수준에서 움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해외 투자자의 순매수 4위(3억 8436만 달러)인 슈와브 US 디비던드 에퀴티 ETF(SCHD)의 한 해 수익률은 4.2%다. SCHD는 미국 대표 배당 ETF로 지난 5년 평균 배당 수익률이 14%에 달해 배당 투자자 사이에 인기가 높다. 순매수 5위(3억 7791만 달러)는 프로셰어즈 울트라프로 쇼트 ETF(SQQQ)로 손실률이 73.5%에 달했다. SQQQ는 미국 나스닥 100지수 움직임을 반대로 3배 추종하는 상품이다. 인공지능(AI) 열풍에 미국 기술주가 대거 상승해 그 반대로 투자한 SQQQ 투자자의 손실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