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중고차 시장은 고금리 여파 등으로 역대급 한파를 맞았다. 중고차 거래가 활발한 봄철에도 소비 심리 위축에 따라 시세 하락폭이 더 커지며 성수기 효과를 누리지 못했을 정도다. 경기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높은 중고차에 대한 시장 선호도는 높아졌다.
31일 케이카에 따르면 올해 국산 중고차 시세는 월 평균 1.4%의 하락률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중고차 시장에서 유통되는 출시 12년 이내 740여 개 모델을 대상으로 평균 시세를 분석한 결과다. 중고차 시세는 통상적으로 매달 전월 대비 1%가량 하락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올해에는 이보다 높은 수준의 하락폭으로 약세를 보였다.
중고차 시장은 올해 전통적인 계절적 성수기에도 특수 효과를 누리지 못했다. 고금리 및 고유가 기조로 구매 부담이 높아지면서 중고차 수요에 대한 수요도 줄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연중 최대 성수기인 지난 3월 국산 중고차 시세는 한 달 만에 2.6% 대폭 내린 것으로 집계됐다. 7~8월에는 유가 안정으로시세 하락폭이 –0.2~-0.8%로 소폭 완화됐으나 9월에는 다시 –1.7%로 확대됐다. 이후 중고차 시세는 매월 하락률 등락을 보이다 이달 들어선 –1.8%로 더 키웠다.
완성차 업체의 판촉 경쟁도 중고차 시세에 악영향을 미쳤다. 국내외 주요 완성차 업체는 하반기 판매량을 확대하기 위한 공격적인 신차 할인에 나섰다. 시세 산정의 기준점인 신차 실구매가가 낮아지면서 사용 기간과 주행거리가 짧은 ‘신차급 중고차’의 시세도 하락세로 돌아섰다. △현대 팰리세이드(-4.7%) △기아 K8 하이브리드(-3.9%) △현대 그랜저 GN7(-3.2%) 등이 대표적인 예다.
특히 중고 전기차의 약세는 하이브리드 또는 내연기관차에 비해 뚜렷했다. 올해 전기차 수요 둔화로 부진으로 제조사의 가격 할인, 정부의 보조금 확대가 이뤄지며 신차 가격이 내리면서 중고차 시세에도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전기차는 앞서 친환경 트렌드와 정숙성, 편안한 승차감 등으로 인해 각광을 받았지만 최근 충전 인프라 부족과 배터리 안전성에 대한 우려, 높은 판매 가격으로 주춤하는 상황이다.
이에 중고 전기차 시세는 2월 -4.2%로 한 차례 큰 하락폭을 겪은 후 -2% 수준의 하락폭이 이어지다 12월 다시 -3.8%까지 하락폭이 커졌다. 수요 감소로 판매 부진을 겪고 있는 △제네시스 G80(RG3) 일렉트리파이드(-10.1%) △제네시스 eGV70(-7.0%) 등이 이달 들어 크게 하락했다.
시장 불황 속에서 가성비를 갖춘 중고차는 높은 인기를 끌며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어려운 경제 여건을 고려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고차를 찾는 소비 성향이 짙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케이카가 올해 판매한 중고차 모델 중 가장 낮은 가격대인 ‘500만 원 미만 모델’ 판매량은 전년 대비 22.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은 연식 5년 이하 모델의 판매량은 같은 기간 15.7% 감소했다.
12월에도 1000만 원대 중저가 중고차의 시세는 강보합세를 유지하고 있다. 기아 올 뉴 쏘렌토(0.9%)와 기아 더 뉴 K5 2세대(0.5%),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0.4%) 중고차 시세는 이달 오히려 상승하면서 하락을 기록한 전체 시장 흐름과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조은형 케이카 PM팀 애널리스트는 “중고차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1000만 원대 모델들은 신차 출고가 대비 절반 이상의 감가가 이뤄져 가성비가 높은 모델로 평가된다”며 “어려운 경제 상황으로 인해 위축된 소비 심리 영향으로 중저가 모델 선호가 높아지며 12월 시세 방어가 이어질 전망”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