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태영건설(009410)이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을 신청한 가운데 글로벌 3대 사모펀드로 꼽히는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가 태영그룹에 올 해에만 7000억 원을 투자한 것으로 집계돼 배경에 관심이 모아진다.
3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KKR은 태영그룹 지주사 TY홀딩스의 사모사채 4000억 원 어치를 올 1월 매입했다. 이 사모사채는 4년 만기 연 13% 고금리로 발행됐다. 연 이자만 500억 원대에 달한다. TY홀딩스는 이렇게 마련한 자금을 곧바로 자회사 태영건설에 대여해 급한 불을 끄게 했다.
당시 TY홀딩스가 KKR에 손을 벌린 건 태영건설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 우발 채무가 급격히 늘어나면서다. 태영건설은 부동산 호황기 PF 보증을 크게 늘려 지난해부터 급속도로 재무 위기가 번졌다.
금융권 추산에 따르면 태영건설의 순수 부동산 PF 잔액은 약 3조2000억 원, 이달까지 만기인 PF 보증채무는 3956억 원이다. 태영건설의 3분기 말 기준 순차입금은 1조9300억 원, 부채비율은 478.7%다. 시공 능력 평가 35위 내 주요 대형·중견 건설사를 통틀어 가장 높다.
TY홀딩스는 태영건설의 재무 위기가 가속화하자 KKR에 최근 또다시 손을 벌렸다. 당시 KKR은 TY홀딩스와 윤석민 회장이 보유하던 태영인더스트리 지분 100%를 2400억 원에, TY홀딩스의 평택싸이로 지분 37.5%를 600억 원에 인수하며 이달 말까지 총 3000억 원을 추가 수혈해줬다.
IB 업계에서는 태영그룹을 향한 KKR의 이 같은 대규모 투자가 양면성을 가졌다고 평가한다. 은행권에서 추가 차입이 쉽지 않은 태영건설 입장에서는 급한대로 현금을 마련해 위기를 모면하는 효과를 냈다. 반면 사모펀드 입장에선 벼랑 끝에 선 태영의 상황을 이용해 우량 자회사 경영권을 싼 값에 확보하는 좋은 투자 기회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KKR은 태영인더스트리를 인수한 것 외에도 TY홀딩스의 주요 자회사인 에코비트 경영권의 우선 매수권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에코비트는 태영그룹과 KKR이 2021년 5대 5 지분율로 합작 설립한 회사다. 현재 매립·수처리 및 의료·산업 폐기물 소각 사업을 하고 있다. 올 초 KKR은 TY홀딩스 사모사채에 투자하면서 이 회사 지분을 담보로 확보해 둔 상태다.
태영그룹은 이번 워크아웃을 신청하며 자구책 일환으로 에코비트 지분을 팔기로 가닥을 잡았다. KKR은 먼저 시장에서 적당한 매수자가 있는지 살펴본 뒤 우선 매수권을 행사할지 검토할 전망이다. 에코비트의 전체 기업가치가 최대 3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KKR 입장에선 이 담보권을 활용해 수익을 낼 한층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국계 조셉 배 최고경영자가(CEO) 이끄는 KKR은 과거에도 한국에서 최소 두 차례 투자를 통해 막대한 차익을 남긴 것으로 업계에 유명하다. 2009년 OB맥주를 18억 달러에 인수한 뒤 2014년 글로벌 주류 기업 AB인베브에 58억 달러를 받고 매각, 무려 40억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수익을 거머쥐었다. 2017년엔 LS엠트론의 동박사업부를 3000억 원에 인수했는데 2년 만인 2019년 SKC(011790)에 1조2000억 원을 받고 매각해 약 9000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