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일단 얼려보는 별난 습관이 생겼다. 아이스크림 개발을 맡게 되면서다. 빵과 젤리부터 약과까지 종류도 가리지 않는다. “젤리는 잘 안 씹히긴 해요. 입에서 좀 녹여야 돼요. 바로 먹으면 딱딱한데 몇 분 지나면 맛있긴 하더라고요.”
늘 아이스크림만 생각했다. 그렇게 찾은 전문점은 국내에서만 50곳 이상. 지난 2022년 4월 발령받은 이후 10㎏나 몸무게가 늘었을 정도다.
그런데도 기쁘다고 한다. 원래 전통주를 담당하던 그가 이 업무를 자원한 이유도 단지 ‘아이스크림이 좋아서’다. 지난달 29일 만난 김혜림 세븐일레븐 아이스크림 담당 MD 이야기다.
대표적인 북유럽 ‘극지’에 속하는 핀란드. 여름마저 선선한 냉대 기후인 데다 습한 환경 탓에 체감 온도는 더욱 내려간다. 그런데 김 MD가 여행 삼아 찾은 이 나라 사람들의 손에는 소프트콘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살을 에는 냉기 탓에 찬 음식을 피하리란 통념과는 달랐다.
일종의 본능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방을 섭취하면 따뜻한 느낌이 나기 때문이다. 체력 소모가 많은 날씨일수록 열량이 높은 크림류를 찾게 된다는 뜻이다. 이 때 그는 겨울에 내놓을 자체브랜드(PB) 아이스크림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아이디어에 머물던 ‘밀크바닐라콘’의 상품화 가능성은 출장지였던 일본에서 발견했다. 끼니 삼아 하루에 열 개가 넘는 아이스크림을 먹던 그의 시선이 전문점에 이어 편의점 냉동고에도 머물렀다.
대량생산도 가능하겠다는 자신감을 여기서 얻었다. 김 MD는 “일본 편의점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형태의 제품이 나와 있는 데다 브랜드별로 PB 소프트콘이 출시돼 있었다”고 했다.
귀국하자마자 시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많아야 5~10%의 원유를 담은 시중 상품과 달리 35%에서 시작해 오히려 비율을 높여 나갔다. 50%선에 이르자 진한 버터향을 풍기기 시작했다. 높은 단가 탓에 처음에는 반대했던 동료들도 결국 고개를 끄덕인 순간이었다.
월드콘이나 메로나와 견줄 새로운 ‘스테디셀러’를 만들고 싶단 욕심은 곳곳에 디테일로 숨었다. 하단부 콘 과자의 재료를 바꾸기도 수 차례였다. 냉동 보관을 버텨낼 두툼하고 바삭한 와플 식감을 내기 위해서다. 하얀색이 주를 이루는 경쟁 상품의 패키지나 냉동고 가운데서 최대한 눈에 잘 띌만한 검은색과 금색 포장도 골라냈다.
그렇게 개발된 밀크바닐라콘이 매대에 나온 건 지난해 10월. 출시된지 얼마 되지 않아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몇달 째 세븐일레븐에서 카테고리 내 1위를 지키고 있다. 내부에서 겨울철 아이스크림 매출을 평소 대비 15%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3000원에 달하는 높은 가격에도 소비자들은 지갑을 열었다. 콘아이스크림은 빙과류와는 달리 디저트의 하나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김 MD는 “제품을 맛본 직원들이 ‘이제는 세븐일레븐의 PB 아이스크림 수준이 이렇게까지 많이 올라왔다’고 말할 때면 가장 뿌듯하다”고 말했다.
다시 찾게 되는 맛으로 시장에 안착한 다음엔 ‘특이한’ 상품을 내놓겠다고 했다. 최근에는 바질토마토와 감태카라멜, 감자 등을 넣은 아이스크림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꿈꾼다는 ‘덕업일치’를 이루고 있어서일까. “시즌성으로 특별한 맛을 개발하려고 찾고 있다”고 말하는 그의 눈빛이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