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스공사가 도시가스 원료비 연동제의 유보 조건을 강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총선 등 정무적 이유로 연동제 유보가 남용돼 수입 가격 상승분이 요금에 반영되지 않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지난해 5월 이후 민수용(주택용·일반용) 가스요금이 잇따라 동결돼 미수금이 16조 원을 넘길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자 서둘러 제도 개선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2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가스공사는 최근 원료비 연동제의 유보 조건을 구체화하고 현행보다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가스공사는 현재 연동제 합리화를 목표로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제도 개선을 위한 로드맵을 마련해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원료비 연동제는 가스공사의 천연가스 수입 대금을 가스요금에 적기에 반영하기 위한 제도다. 원료비를 국제유가와 환율에 연동해 전쟁 등에 따른 수급 불안으로 수입 가격이 상승할 때 가스요금도 적절하게 올려 가스공사의 손실을 막아주는 장치다. 원료비는 가스공사가 각 도시가스사에 가스를 공급하는 가격인 도매가격의 85.7%(주택용 기준)나 차지해 사실상 소매가격 수준을 결정짓는다.
문제는 이 원료비 연동제가 수시로 유보돼 요금 인상을 가로막는다는 점이다. 가스공사의 천연가스 공급 규정에 따르면 국제유가 또는 환율 급등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현저하게 상승하거나 상승할 우려가 있어 경제 운용에 부담이 생기면 산업부 장관은 가스공사에 연동제를 유보한다고 통보할 수 있다. 2020년 말부터 천연가스 가격이 빠르게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민수용 도매 요금이 동결된 이유다.
특히 민생과 직결되는 민수용 도매 요금은 지지율 관리와 선거 등을 이유로 수시로 동결됐고 그 피해는 가스공사가 고스란히 떠안았다. 2020년 7월부터 2022년 3월까지 민수용 도매 요금 동결로 가스공사 미수금은 2018년 4826억 원에서 지난해 3분기 15조 5432억 원으로 32.2배 폭증했다. 미수금은 천연가스 수입 대금 중 판매 요금으로 회수하지 못한 금액이다. 2022년 5월부터 1년간 가스요금이 오르며 미수금 증가세는 다소 느려졌지만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물가 관리 탓에 지난 3·4분기 요금은 동결되며 곧 집계·발표될 지난해 연간 가스공사 미수금은 16조 원을 넘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지난해 10월 감사원 역시 정부의 원료비 연동제 유보 사유와 판단 기준이 구체적이지 않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간 가스공사 안팎에서는 연동제 유보 조건에 국제유가 수준을 명시하거나 미수금이 일정 수준을 초과하면 연동 유보를 하지 못하게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책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미수금이 일정 수준이 넘으면 연동제 유보를 중단하고 요금을 올린 뒤 미수금이 어느 정도 회수되면 다시 연동제를 유보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있다”며 “또 연동제 유보에 따른 손실을 반드시 일정 기간 내에 보전해야 한다는 내용을 지침에 넣어 정부가 연동제 유보를 남용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현재 지침상에는 ‘향후 가스가격 안정 시’ 연동제 유보에 따른 손실 보전을 산업부 장관에게 요구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를 ‘연동제 유보에 따른 손실은 향후 2년 내로 보전해야 한다’ 등으로 보다 구체화하자는 것이다. 가스공사 재무 담당자는 지난해 한 국회 토론회에 참석해 미수금 상하한제를 도입, 미수금이 과도할 경우 연동제 유보를 막는 정책을 제안하기도 했다.
연동제 유보 조건을 강화하기 위한 지침 개정에는 산업부의 승인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가 이에 적극적일지는 미지수다. 한 관계자는 “산업부는 지침 개정을 검토할 수 있지만 기획재정부와의 협의에 부담을 느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공요금 결정 시 산업부는 물가 관리 총괄 부처인 기재부와 반드시 협의를 거치는데 정부의 물가 관리 재량을 넓히는 ‘연동제 유보’에 대한 권한을 기재부가 놓기 꺼려할 것이라는 우려다. 이에 대해 산업부 관계자는 “가스공사의 용역 결과를 참고해 제도 개선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