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컨설팅 업계 최초의 외국인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일본통.’
송수영(사진) 휴온스글로벌(084110) 대표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다. 송 대표는 일본 경제가 순항하던 1999년부터 25년간 일본에 거주하며 정보기술(IT) 기업인 SAP재팬, 이동통신사 NTT 도코모, 딜로이트컨설팅 재팬을 두루 거쳤다. 2022년 휴온스(243070)에 합류하며 제약·바이오 기업 대표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경영 컨설팅 전문가답게 2년 만에 밀키트 제조·유통 전문 기업 푸드어셈블 인수, 완제 의약품 제조·판매 기업인 크리스탈생명과학 인수, 계열사 휴온스푸디언스·휴온스메디텍·휴엠앤씨 합병 등의 성과를 이뤄냈다. 2025년에는 매출 1조 원 달성이 목표다.
송 대표는 2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걸어온 삶과 휴온스그룹의 비전을 나눴다. 그는 “회사 내 유일한 한국인이었지만 최고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데는 노력·정직·겸허라는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지난 경험을 바탕으로 휴온스를 매출 잘 올리는 회사를 넘어 ‘품격 있는 회사’로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송 대표는 대학 동기였던 윤성태 휴온스그룹 회장과의 인연으로 휴온스글로벌에서 대표로 또 다른 인생을 시작했다. 송 대표는 “사람을 살리는 약을 만드는 회사의 CEO를 한다는 것은 엄청난 영광이고 명예지만 책임이 따르는 일이기도 하다”면서 “품질에 대한 고집과 제약 회사의 사명감은 경영 컨설팅 회사에서 돈을 좇던 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들어온 것 같아 힘들지만 행운이라고도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처음 일본 땅에 발을 디뎠을 때처럼 다시 노트를 꺼내들었다. 송 대표는 “처음 일본어를 공부했을 때처럼 손가락 한두 마디 정도 두께의 노트 세 개를 만들어 어떤 회의에서 나온 단어고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단어장을 만들었다”며 “2년만 더 하면 다른 사람들이 10년쯤 축적한 지식을 쌓을 정도로 열심히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송 대표와 일본의 인연은 삼성전자(005930)에서 처음 맺어졌다. 그는 그룹의 컨트롤타워로 불리는 전략기획실에서 일하며 ‘1호 지역전문가’로 일본에 다녀왔다. 송 대표는 “일본어를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건너갔지만 돌아와서는 시험에서 1등급을 받을 정도로 실력을 길렀다”면서 “삼성에서의 마지막 3년은 삼성 재팬에서 경영 혁신 관련 업무를 맡았다”고 설명했다.
인생의 전환기는 삼성전자를 그만둔 후 찾아왔다. 지속된 스트레스와 과로로 건강이 급격하게 나빠진 그는 부모님이 계신 미국으로 향했다. 휴식도 취하고 사업을 하시는 아버지를 따라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해서다. 막상 미국 땅에 도착한 후에는 3개월 내내 술을 마셨다. 송 대표는 “삼성전자에 있을 때는 내가 제일 잘난 사람인 줄 알았지만 회사 이름과 직위를 떼고 나와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면서 “사회에 다시 복귀한다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두면서 겸허함을 잊지 않겠다는 각오를 했다”고 회고했다. 그때의 결심은 다시 일본 땅을 밟은 뒤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
‘일본인보다 일본어를 더 잘해야 한다.’ SAP재팬·NTT·딜로이트컨설팅재팬 등을 거치면서 직원들 중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송 대표는 보수적인 일본 사회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노력’뿐이라고 생각했다. 일본어 수첩을 만들고 통째로 외웠다. 일본어로 말하고 일본어로 생각했다. 일본의 야구·문화까지 숙지했다. 10여 년이 지나자 현지 임원들에게 비즈니스 e메일을 쓰는 법까지 교육할 정도로 실력이 월등해졌다. 그는 “처음에는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건네는 사람이 없었지만 이제는 일본 사람들이 대화를 하면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릴 정도라고 한다”며 “일본 사람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데는 일본에서 나를 쫓아올 사람이 없다고 확신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고 자부했다.
경영 컨설팅을 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10년 연속 프로젝트 수주 1위 자리를 꿰차며 업계 하위권에 머물던 회사를 1위(매출 기준)로 끌어올렸다. 송 대표는 “사전에 신문 기사, 온갖 자료 등으로 사람과 업계를 연구해 고객에게 신뢰를 주려고 한 결과 믿고 일을 맡기는 사람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외국인 최초로 딜로이트컨설팅재팬에서 CEO 자리까지 올랐다. 외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파트너들은 송 대표에 투표했다. 송 대표는 이런 성과에 대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모든 성과가 주변 사람들 덕분’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강조해왔다. 그는 “10년 동안 수주 1위는 내가 한 게 아니라 팀이 해낸 일로 꾸준히 평판을 쌓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면서 “CEO 역시 내가 뛰어나서 된 게 아니라 파트너들의 마음을 샀기 때문에 그들의 표를 얻어서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신입 사원 교육을 가서도 오늘 이 순간부터 겸허라는 말을 생각하면서 살면 주변에 사람들이 모인다고 가르쳤다”며 “자기 분수보다 밑에서 겸허하게 살면 분수가 올라가고 분수 위에 있으면 오히려 분수가 내려간다. 스스로 분수를 알고 살았기 때문에 무사히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정직’ 역시 송 대표가 일본 사회에서 CEO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이다. 정직한 사람들을 좋아했고 그들을 따랐다. 송 대표는 “단 한 번도 일을 따내기 위해 정직하지 못한 일을 한 적이 없다”며 “일본 사람들은 융통성이 없고 매뉴얼대로 하는 것이 특징이라 순간순간 돈을 벌기 위해서 거짓말을 했다면 나의 경영 컨설팅 업력은 2년으로 끝났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일본에서 임원이 된 후 1차 식사 이외에는 2차로 술집·클럽 등을 간 적이 없고 한국에 와서도 마찬가지”라며 “일본 경제계에서 임원 자리에 있기 위해서는 털어도 먼지가 나지 않아야 된다는 압박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휴온스 그룹은 송 대표 합류 이후 눈에 띄는 성과를 올리고 있다. 지난해 6월 2% 리도카인 주사제 5㎖의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이끌어냈다. 리도카인을 비롯한 5개 품목의 미국 시장 수출은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 188억 원으로 전년 동기 65억 원 대비 3배 늘었다. 경영 컨설팅 전문가답게 휴온스 계열사 내 3건의 인수합병(M&A)을 진행하면서 중복 사업을 정리하고 협업을 통한 시너지 극대화를 노리고 있다. 푸드어셈블과 크리스탈생명과학 인수를 통해 사업 영역을 다각화하고 미래 성장을 위한 새로운 동력을 마련하고자 했다. 실적도 매번 역대 최대 수준이다. 2020년 첫 연 매출 5000억 원을 돌파한 후 두 자릿수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3분기 실적은 연결재무제표 기준 매출액 1906억 원, 영업이익 319억 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각 13.8%, 75% 성장했다.
2025년에는 매출 1조 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룹의 사업 재편과 계열사 합병 등을 통해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미국 법인과 일본 법인을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 확대를 위한 노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특히 미국 제네릭 주사제 시장에 집중 투자하면서 제품 라인업을 다양화하고 경쟁 상황에서 더 강력한 입지를 확보해나갈 예정이다. 이와 함께 전 그룹사가 사회적 기업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을 방침이다.
송 대표는 “CEO로서 돈 버는 것은 자신 있고 어떻게 하면 회사가 자원을 낭비하지 않고 좋은 실적을 낼 수 있는지도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다”면서 “휴온스가 급성장하고 있는데 ‘돈 많이 버는 회사’라는 평가보다는 ‘사회와 국민에 감동을 줄 수 있는 따뜻한 회사, 품격 있는 회사’라는 평가를 들을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송 대표는 이를 위해 우직한 연구개발(R&D) 활동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봤다. 제약 강국이라고 불리는 일본 제약 산업에서 배울 점도 그 부분이라는 지적이다. 송 대표는 “일본 기업은 대를 물려가며 R&D를 하고 R&D 출신들이 CEO가 됐다”며 “고리타분하고 느릴 수 있지만 벌어들인 돈을 재투자해서 실패하더라도 끝까지 가는 R&D에 대한 인식이 있었기에 글로벌 기업들이 많이 나왔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경기 둔화가 장기화하고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 대한 투자가 위축되는 가운데서도 외부 R&D 파이프라인 도입부터 파트너십 체결, 지분 투자까지 미래 성장 재원 확보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이유다. 휴온스그룹의 R&D 비용은 코스닥 상장 제약·바이오사 중 상위 3위 안에 든다.
송 대표는 “어려운 때일수록 더 좋은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고 공격적으로 투자하려고 한다”며 “직원들이 더 고민하고 궁리하면 좋은 아이디어들이 나타나는 것이고 경영자가 어떻게 잘 융합하느냐가 중요한데 그것이 바로 경영 기술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