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진년 아침이 밝았다. 희망찬 원단에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로 전국 해맞이 명소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신년 해맞이 행사의 기원에 대한 설왕설래를 일단 옆으로 밀어 놓고 나면 옛사람들의 글과 그림에서 일출이 주는 설렘과 간절함을 만나게 된다.
사실적이면서도 심미적인 문체로 평가받는 조선 후기 의유당 남씨의 ‘동명일기’에는 해돋이의 장엄함이 섬세하고도 힘 있게 펼쳐진다. 해금강을 찾은 연암 박지원의 ‘총석정관일출’에도 일출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읽힌다. 어둠을 뚫고 솟아오른 태양을 본 연암의 감동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일출의 설렘은 그림에도 담겼다. 진경산수화로 유명한 겸재 정선이 양천현감 재직 중에 그린 ‘목멱조돈’에는 남산의 능선에 걸려 있는 붉은 해가 보인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새벽을 여는 어부의 조용한 간절함도 느껴진다.
이러한 선조들의 마음이 새해를 맞이한 우리, 그리고 한국어를 좋아하는 세계인들의 마음에 오버랩된다. 전 세계 85개국, 248개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도 저마다의 꿈을 가지고 희망찬 새해 아침을 맞았다. 2023년을 마무리하면서 학생들이 선택한 아름다운 한국어 단어 목록에는 ‘꿈’이 있었다. 이제 이들이 2024년을 바라보면서 가지게 된 그 꿈은 무엇일까.
지난해 세종학당 우수학습자 초청 연수에 참가한 한 프랑스인 학생이 있다. 그는 세종학당재단에서 기획한 ‘KBS 글로벌 우리말 겨루기대회’의 파리예선전 우승자다. 어느 셀럽의 팬으로 한류에 입문하게 됐다는데 어떻게 그처럼 눈부신 한국어 실력을 갖추게 됐는지보다 더 궁금한 것은 왜 배우는가였다. 답은 간명했다. 눈동자에는 강인한 의지가 빛났다. 외교관이 돼 한국과 프랑스의 가교 역할을 하고 싶은 마음, 그것이 그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고 한다.
지지난해 연수에 참가해 우수상을 거머쥔 바르셀로나 세종학당 학생은 25개국에서 출간된 한국 작가의 책을 스페인어로 번역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번역가라는 자신의 꿈을 떨리지만 강단 있는 목소리로 힘줘 말한다.
한국어로 꿈을 꾸기 시작한 사례는 더 있다. 나노물리학이나 암센터 연구원, 교육자와 행정가들은 물론이고 의료·법정 통역 같은 전문 분야도 나오기 시작했다. 김치라는 ‘한류 콘텐츠’로 자신의 영역을 개척한 사업가들도 후배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한국어를 배우는 목적도 점차 다양하고 원대해졌다.
이들은 한국어가 꿈의 나라로 가는 여권 같다고 말한다. 한국어를 선택한 이들의 신선한 도전을 마주하니 ‘인생을 꿈으로 만들고 그 꿈을 현실로 만들라’는 생텍쥐페리의 말을 전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