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심장을 만날 때까지 두 번째 심장이 버텨주길 기대해야죠. 더욱 건강한 모습으로 갑진년 한 해를 보내면서 심장이식을 기다릴 생각입니다. ”
심장 근육의 이상으로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커지는 병을 앓았던 엄마와 아들이 서울아산병원에서 각각 두 번째 심장을 선물 받으며 더욱 뜻깊은 새해를 맞았다.
4일 서울아산병원에 따르면 이 병원 심부전·심장이식센터는 지난해 11월 말 확장성 심근병증을 앓던 30대 이모 씨에게 '좌심실 보조장치(Left Ventricular Assist Device)를 삽입하는 데 성공했다. 영문 앞글자를 따 '엘바드(LVAD)'라고 불리는 좌심실보조장치는 말 그대로 심장에서 전신으로 혈액을 내보내는 좌심실의 기능을 보조한다. 인공심장을 이식해주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쉽다.
서울아산병원에서 100번째로 LVAD 삽입술을 시행받은 이씨는 한달여 에 걸친 입원 치료를 마치고 지난해 12월 29일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했다.
이씨의 사연은 그의 어머니 김모 씨 또한 같은 질환으로 14년 전 서울아산병원에서 심장이식을 받았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 깊다. 지난 2009년 김씨는 당시 유일한 치료법이었던 심장이식을 간절하게 기다리다 뇌사자 심장 이식이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지금보다 의료 수준이 뒤쳐지고 심장이식 기증자가 부족했던 당시에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김씨는 정성호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의 집도로 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건강하게 생활해 오고 있다.
김씨는 야속하게도 아들이 본인과 동일한 질환으로 치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심장이식 기증자는 여전히 부족하지만 14년 전과 비교해 달라진 건 의료수준이 크게 발전했다는 것. 아들 이씨는 당장 기증 심장을 이식받는 대신, 이식을 기다리는 동안 심장 펌프 기능을 대신해 혈액순환이 잘 되도록 도와줄 LVAD 삽입술을 먼저 받기로 했다. 14년 전 수술실로 들어가던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응원하던 고등학생 아들이 반대로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를 받으며 수술실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4시간에 걸친 수술은 정철현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의 집도 아래 성공적으로 끝났다.
이씨는 "수술 전에는 가만히 있어도 숨이 차고 피곤했는데 이제는 자연스럽게 숨이 쉬어진다"며 "퇴원하면 가까운 곳으로 여행도 다닐 생각"이라고 설레는 마음을 전했다.
심부전은 심장의 펌프 기능이 떨어져 심장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상태다. 모자가 앓았던 확장성 심근병증을 비롯해 관상동맥질환, 선천성 심장질환 등이 주요 발병 원인으로 꼽힌다. 심부전 초기에는 약물 치료가 가능하지만 말기에는 심장이식이 최선이다. 하지만 심장이식 기증자가 적어 대기기간 중에 사망하거나 급격히 상태가 악화될 수 있고, 고령이거나 동반 질환이 많으면 심장이식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 망가진 심장 대신 펌프기능을 보조해줄 기계 장치를 넣어주는 시술이 대안으로 활용된다.
서울아산병원은 2015년 6월 3세대 LVAD를 국내 처음으로 시행한 이래 꾸준히 시술건수를 늘리면서 최근 누적 100례를 달성했다. 작년 한 해동안 시행된 LVAD 삽입술만 26건에 달한다. 보조장치를 삽입한 환자의 1년 생존율은 80% 내외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아산병원은 82.6%로 세계 평균보다 높은 생존율을 기록 중이다. 최연소 17세부터 최고령 78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환자가 LVAD 삽입술을 받았고, 그 중 41명이 건강하게 대기하다가 새로운 심장을 이식 받았다.
김민석 서울아산병원 심부전·심장이식센터장(심장내과 교수)은 “높은 심장이식 수술 성공률에도 불구하고 기증자가 부족해 이식 대기 중 사망하거나 급격히 상태가 악화되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심부전 환자의 치료 경험과 심장이식 수술 노하우를 바탕으로 환자 생존율 및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좌심실보조장치 삽입술을 적극 시행해 성공적인 결과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