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기업 거버넌스 대타협

이한상 한국회계기준원 원장



윤석열 대통령이 2일 증시 개장식에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 참석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역설하면서 상법 개정을 언급했다. 상법 제382조의 3은 이사의 충실 의무 조항이다.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당연한 내용인 듯하지만 이 조항은 주주 보호가 강한 국가에서는 이사진이 특정 주주를 위한 의사 결정으로 다른 주주의 이익을 침해할 경우 민사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함의를 지닌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이사의 의무는 회사가 대상이지 주주는 아니라는 게 통설이다. 소위 ‘오너’를 위한 일감 몰아주기나 자본거래로 주주 간 부의 이전이 일어나도 회사 전체로 문제가 없으면 이사진은 책임이 없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 서울동부지법은 지난해 초 에스엠이 카카오에 신주와 전환사채를 발행해 9% 정도의 지분을 늘려 주려던 계획을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적시하며 좌절시켰다. 감사 선임 시 최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한 ‘3% 룰’을 앞세워 행동주의 투자자들도 지배구조가 취약한 회사를 상대로 주주 제안을 늘리고 있다.


그러나 판례가 통설이 되려면 족히 수십 년은 걸린다. 법무부가 보수적인 것도 잊지 말자. 행동주의 투자자를 소액주주들의 백기사로 생각하는 것도 순진하다. KCGI는 지난달 지배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DB하이텍 주식을 샀다 프리미엄을 얹어 되팔았다. 행동주의 펀드가 제도를 보완할 순 있지만 제도를 대체할 수는 없다.


더불어민주당이 마침 상법 개정의 시동을 걸었다. 이용우 의원은 충실 의무 조항의 ‘회사’를 ‘주주의 비례적 이익과 회사’로, 박주민 의원은 ‘회사와 총주주’로 고치자고 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지난해 4월 법 통과를 촉구했는데 당시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획기적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제 대통령까지 나섰다. 정치권의 극단적 대결 양상 국면에서 보기 드문 컨센서스다. 어떻게 가능해졌을까. 1400만 개인투자자들의 지지를 업고 있기 때문이다.


이사의 법적 책임이 증가하니 기업은 반발할 만하다. 더는 ‘월급 루팡’으로 거수기 노릇을 할 전문가를 찾기 힘들 것이다. 대주주를 위한 손익거래와 자본거래, 그리고 주가를 떨어뜨린 이사회의 모든 결정에 소송의 위험이 상존한다. 한국상장사협의회를 포함한 경영자 단체의 반발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만 할 것인지 묻고 싶다. 실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려면 거버넌스 대개혁이 필요하다. 이는 재계가 요구하는 상속·증여세 개선 및 배당 분리과세를, 지배구조 개혁의 총아인 상법 제382조의 3 개정과 맞바꾸는 대타협으로 완성할 수 있다. 상법 개정은 거버넌스 정상화를 촉진할 것이다. 상법 개정 시 비정상적인 3% 룰의 폐지와 소송 남발 방지 장치 입법도 병행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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