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나 가족 없이 홀로 국경을 넘었지만 한국에서 제대로 정착하지 못해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는 북한이탈주민(탈북민)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까지 겪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무연고 사망자도 많은 만큼, 탈북민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7일 통일부에 따르면 남북하나재단에서 시신 안치 등을 지원한 탈북민 무연고 사망자는 지난해 기준 14명으로 2019년(7명) 대비 2배 증가했다. 특히 2022년에는 무연고 사망자가 19명 발생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이렇게 전국 추모관 등에 안치된 탈북민은 5년간 50명에 달한다. 이들은 훗날 통일이 되거나 나중에 가족들이 찾으러 올 때까지 봉안 시설 등에 임시 안치된다.
탈북민의 무연고 사망 비율이 늘어나는 주원인 중 하나는 취약한 경제적 상황이다. 통일부에 따르면 전체 탈북민 3만 4000여명 중 약 7200명이 위기정보가 장기간 중첩된 고위험군으로 분류됐다. 전체 탈북민 중 21%는 건강보험료, 주택임대료 및 관리비, 통신비 등을 3개월 이상 체납할 정도로 경제 상황이 어려워 정부의 관리를 받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경제활동에 적극 참여해야 할 젊은층이 경제적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해 탈북민 무연고 사망자 중 42%(6명)는 30~40대다. 재단 관계자는 “30~40대 탈북민의 사망 사유를 정확히 다 알기는 힘들지만, 대부분 한국의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생활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추측된다”면서 “한국 생활이 녹록지 않다 보니 질병, 자살 등 다양한 이유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탈북민 고독사는 매년 반복되고 있다. 지난 2022년 10월에는 20여년 전 북한 함경북도에서 홀로 한국에 넘어왔던 탈북민 김 모(49) 씨가 서울 양천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백골 상태로 발견됐다. 김 씨의 시신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부검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부패된 상태였다. 경찰은 김 씨가 겨울옷을 입고 있던 점 등을 고려해 그가 사망한 시점이 1년 이상 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김 씨는 2020년 12월부터 아파트 관리비를 체납하는 등 생활고를 겪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2019년엔 탈북민 한 모(41) 씨와 여섯 살 난 아들이 서울 관악구의 한 임대 아파트에서 숨진 뒤 두 달이 지나서야 발견됐다. 한 씨 모자가 발견됐을 당시 집 냉장고는 텅 비어 있었다.
가족이나 친척·친구 없이 ‘나홀로’ 탈북한 이들은 생활고에 시달려도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실시된 북한이탈주민실태조사에서 탈북민 응답자의 22.3%가 ‘낙심하거나 우울해도 이야기할 상대가 없다’고 응답했다. 코로나19로 갑작스레 찾아온 비대면 사회가 이 같은 위기 상황을 더욱 심화시킨 것으로 풀이된다. 설상가상 드러나지 않은 탈북민 무연고 사망자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통상 무연고 사망 사실을 확인한 뒤 장례를 치르는 역할을 지자체에서 담당하는데 지자체 공무원이 사망자의 탈북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통일부에 해당 내용을 전달하지 않으면 통계로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전국 지자체에서 고독사한 무연고 사망자가 탈북민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재단에 통보를 하지도 않는 사례도 있다”면서 “현재 통계에서 누락된 탈북민 무연고 사망자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탈북민에 대한 촘촘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 교수는 “구직 과정에서도 탈북민을 위한 일부 지원이 이뤄지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실제 생활을 개선시키는데 한계가 있다”며 “탈북민이 적응하는 모든 과정에서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