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낙타'가 뭐길래? 오스카서 '콘유' 제치고 떠오른 '북유럽 감성' [정지은의 무비이슈다]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 리뷰
칸영화제 이어 오스카 노리는 '사낙타'
헬싱키의 두 남녀가 펼치는 프롤레타리아 로맨스의 절정
전쟁의 피폐함 속에서도 빛나는 영상미와 유머



정지은 영화 기자와 함께 영화 이슈에 관한 수다를 나눕니다. '무비이슈다'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 스틸 /사진=찬란

제76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에 이어 올해 열리는 제96회 오스카 국제장편상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의 국내 인기가 심상치 않다. 국내 관객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핀란드 영화인데다 생소한 배우들의 등장이지만 81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내내 흐르는 이야기는 국내 관객들을 시선을 사로잡았고 누적 관객 수 2만 명을 돌파하며 작은 영화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 스틸 /사진=찬란

◇우크라이나 전쟁의 그늘 속에서 피어오른 사랑 = 이 영화의 배경은 핀란드 헬싱키다. 라디오에서는 끊임없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소식이 들려오고, 전쟁의 기운이 감도는 헬싱키에 사는 두 남녀 안사(알마 포이스티)와 홀라파(주시 바타넨)는 황량한 도시의 풍경 속에서 삶을 이어간다. 핀란드는 우크라이나 전쟁 당사자는 아니지만 누구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나라다. 핀란드는 러시아와 1340㎞ 길이의 국경을 맞대고 있다. 중립국을 표방하던 핀란드는 이번 전쟁으로 인해 중립국 지위를 버리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결정, 올해 4월 31번째 나토 회원국으로 합류했다. 역사적으로 핀란드는 1800년대 우크라이나와 함께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으며 1900년대에 이르러 독립한 경험이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역사, 사회적 배경은 '사랑은 낙엽을 타고' 장면 속에서도 라디오를 통해 줄곧 등장한다. 러시아의 비인도적인 침공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하지만 메마른 시대 속에서도 사랑은 불타오른다. 삭막한 시대지만 두 남녀가 펼치는 보통의 사랑은 그야말로 낭만 그 자체다.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가져갔다는 이유로 일하던 마트에서 해고된 이후 전임자의 죽음으로 인해 자리가 빈 주방보조 일을 구하는 안사. 상사에게 구박에 이어 인권마저도 인정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일하는 홀라파. 두 인물의 본격적인 로맨스는 빈털터리이기에 강도에게도 외면받는 홀라파를 안사가 발견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불운처럼 보이던 우연들은 그들을 한 곳으로 이끌고 데이트 이후 번호를 잃어버려 연락을 할 수 없던 홀라파는 끝내 우연히 또 한번 안사를 만나게 되며 더욱 큰 사랑을 느낀다.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 스틸 /사진=찬란

◇'북유럽 감성의 힘'...81분의 러닝타임이지만 꽉 찬 알맹이 = '북유럽 영화'라고 하면 생소한 느낌이 들지만 노르웨이 최초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오스카 국제장편상을 수상한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의 '어나더 라운드', 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슬픔의 삼각형' 등의 작품들은 모두 북유럽 영화다. 이 작품들 모두 주제는 다르나 한결같이 직설적인 메시지, 시니컬한 감성을 담아내 오히려 관객들에게 ‘뼈 때리는’ 공감과 위로를 전해왔다.


세 작품 모두 국내에서 개봉했으며 누적 관객 수 또한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4만 8000명, '어나더 라운드'는 3만 6000명, '슬픔의 삼각형'은 5만 8000명을 돌파하며 독립예술영화 기준 큰 성과를 거뒀다. 특히 '어나더 라운드'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케실리우스,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의 겔러트 그린델왈드,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의 위르겐 폴러 등 월드와이드 프랜차이즈 영화에서도 다양한 연기를 선보이고 있는 덴마크의 대배우 매즈 미켈슨이 주연을 맡아 국내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또 하나의 북유럽 감성이 담긴 영화인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1957년생의 핀란드 거장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작품이다. 핀란드 영화를 전 세계적으로 알렸다는 평을 받는 그는 1983년 '죄와 벌'로 데뷔한 이후 방콕국제영화제, 뮌휀 국제영화제, 칸영화제 등 해외 유수 영화제들에서 주목을 받으며 세계적인 감독으로 인정받았다. 이번 작품 또한 그의 전작들처럼 노동자 계급을 향한 애정과 시니컬한 시선이 담겨 있다.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서사에서부터 꽤 단조로운 영화임에도 아키 카우리스마키만의 올드 패션 연출이 들어가 흥미를 자극한다. 분명 황량한 시대적 배경임에도 과감하고 쨍한 색깔의 구조물과 소품을 배치해 영상미를 높였으며 이는 전쟁의 피폐함 속에서도 피어나는 사랑의 색깔을 보여주며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더불어 아키 카우리스마키식 시니컬 유머가 들어간 각본 또한 인상적이다. 상사가 "이번 주만 해도 네 번째 지각이야"라고 혼낼 때 홀라파가 "오늘 월요일인데요"라고 대답하는 장면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하게 된다.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 스틸 /사진=찬란

◇작은 고추 '사낙타'...칸 기운 받아 오스카까지 수상할까 =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국내에서도 '작은 고추가 더 맵다'는 속담을 그대로 실현하고 있다. 생소한 북유럽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독립예술영화 좌석판매율 1위를 기록했으며 누적 관객 수 2만 관객 수를 돌파했다.


더불어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지난해 제76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이미 거머쥐었으며 올해 열리는 제96회 오스카 시상식에서도 국제장편영화 예비 후보로 지명됐다. 이때 후보 지명을 위해 함께 경쟁한 작품 중 엄태화 감독의 '콘크리트 유토피아'도 있었기에 더욱 화제에 올랐다. 오는 23일 오스카 최종 후보가 발표 예정인 가운데 '사랑은 낙엽을 타고'가 전 세계적인 저력을 발휘할지 대한 관심이 모이고 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