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채권단이 설정한 데드라인인 7일에서야 태영건설이 자구 계획을 수정할 뜻을 밝혔다. 채권단과 협의가 문제없이 진행될 경우 이르면 8일 수정된 자구안을 제출할 것으로 전망된다. 채권단에 이어 대통령실까지 가세해 “대주주의 자구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며 전방위 압박에 나선 데다 ‘연대보증 유예’ 카드를 통해 워크아웃(기업 개선 작업)의 불씨를 되살리려는 채권단의 노력도 태영 측의 입장 선회에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금융권에 따르면 태영건설은 ‘계열사 매각 대금 정상 지원’ 등을 담은 자구 계획을 금융 당국과 채권단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태영그룹은 태영건설이 지난해 12월 워크아웃을 신청할 때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대금 1549억 원을 태영건설에 지원하기로 한 바 있다. 하지만 당국은 이 중 890억 원이 지급되지 않았다며 이를 정상 이행할 것을 태영그룹에 요구해왔다.
당국이 매각 대금 지원 여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태영그룹 일가가 지주회사인 티와이홀딩스를 지키려 “꼬리 자르기에 나설 수 있다”고 의심했기 때문이다. 특히 5일 윤석민 태영그룹 회장이 태영건설에 대한 직접 지원을 하지 않고 티와이홀딩스 무기명식 무보증 사모사채(영구채)를 인수하면서 불신은 더 커졌다. 금융 당국의 한 고위 관계자는 “태영의 의도는 일단 지주사인 홀딩스에 자금을 모아두려는 것”이라며 “출연한 돈이 실제로 건설에 대여됐는지도 봐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티와이홀딩스를 살리는 게 먼저이다 보니 태영건설을 통해 하기보다는 홀딩스에 돈을 준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태영그룹이 ‘정상 이행’을 약속한 데는 채권단의 유화책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 내에서는 워크아웃 개시 조건이 먼저 이행되면 티와이홀딩스의 태영건설 연대보증을 유예해주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었다. 태영 측에서 약속을 이행할 경우 채권단 역시 태영그룹이 우려하는 티와이홀딩스 부도 위기를 덜어줄 수 있다는 시그널을 보낸 셈이다. 채권단이 자칫 ‘원칙에서 벗어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도 워크아웃 가능성을 다시 살리기 위해 쓴 ‘고육지책’이다. 티와이홀딩스의 태영건설 연대보증 규모는 2700억 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워크아웃이 무산될 경우 티와이홀딩스가 연대보증 책임을 져야 하는 점도 태영그룹으로서는 부담스러웠을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 논의에 밝은 한 인사는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에 진정성을 보인다면 티와이홀딩스의 보증은 유예를 해주는 방식이 가능하지 않겠나”라면서 “태영그룹 사주 일가가 티와이홀딩스만 지키겠다고 하다가 워크아웃에 실패하면 채권자들은 연대보증 책임을 티와이홀딩스에 물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태영그룹은 8일 중 추가 자구책을 공식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자구 계획에 담기지 않았던 대주주 사재 출연 방안도 담길지 주목된다. 앞서 금융 당국은 태영그룹 사주 일가가 티와이홀딩스 지분(윤석민 회장 25.4%)도 함께 출연해 채권단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봤다. 채권단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일가 지분을 담보로 제공 받되 경영권은 인정해주고 나중에 경영이 정상화되면 돌려주는 경우를 참고할 만하다”고 전했다.
자구책이 채권단 75%의 동의를 얻으면 11일 협의회를 거쳐 워크아웃 절차를 밟게 된다. 동의를 얻지 못할 경우 법원의 판단에 따라 회생 여부가 결정되는 법정관리(기업회생) 절차에 들어선다. 기업회생절차는 워크아웃과 달리 일반 상거래 채권 등 모든 채권이 조정 대상이 되며 기간도 10년 정도로 워크아웃보다 훨씬 길다. 이 때문에 건설 업계는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이 좌절될 경우 협력사의 피해가 가장 클 것으로 우려해왔다. 현재 태영건설 협력 업체는 공사 자재를 공급하는 기업 494곳을 포함해 총 1075곳에 달한다. 한 건설 업계 관계자는 “10년 전 법정관리에 들어간 건설사 중 아직도 회복을 못한 곳이 있다”며 “법정관리에 돌입하면 협력 업체들의 채권 회수 가능성도 더 줄어들게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