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이 지난해 12월 말 ‘은행원의 별’이라고 불리는 부행장 인사를 마무리 짓고 갑진년 새해 진용을 재정비했다. 4대 시중은행에서 총 36명이 부행장으로 승진한 가운데 이번 승진 인사의 키워드는 ‘영업’과 ‘리스크 관리’로 압축할 수 있다. 순이자마진(NIM)이 줄어들고 대형 금융 사고가 이어지면서 수익성과 내부통제 강화에 방점이 찍힌 것이다. 특정 대학이나 상업고 출신이 득세했던 이전과 달리 출신 학교별 쏠림 현상이 없었던 것도 눈에 띈다. 다만 여성 승진자가 2명에 그친 점은 아쉬운 대목으로 꼽힌다.
서울경제신문이 5일 4대 시중은행의 지난해 말 부행장 승진자 36명을 분석한 결과 평균 나이는 56세로 집계됐다. 1967년과 1968년생이 각각 12명으로 가장 많았다. 전년 부행장 승진자 평균 나이(54세)보다는 다소 높아졌지만 은행 조직 특유의 ‘연공서열’이 퇴색하는 추세는 이어졌다는 평가다. 은행별로는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이 평균 57세로 가장 높았으며 하나은행이 55세로 가장 젊었다. 입행 이후 임원이 되기까지 걸린 기간은 평균 30년이었다. 36명의 승진자 중 가장 젊은 임원은 1971년생인 김영훈 하나은행 자산관리그룹장 겸 투자상품본부장이었으며 가장 고령은 1966년생인 송용섭 우리은행 여신지원그룹 부행장과 장연수 국민은행 WM고객그룹대표였다.
승진자 중에는 영업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영업통(기업·소매·해외 영업 등) 출신이 9명에 달했다. 자산 성장 제약과 건전성 문제로 은행들의 수익성 악화가 예고되면서 영업을 통해 방어하겠다는 의중이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국민은행은 영업 현장에서 성과가 탁월한 직원에게 승진의 기회를 부여해 영업 경쟁력을 제고했으며 지역 그룹 대표 대상 부행장 직위를 신설해 성과 및 영업 현장 중심의 임원 인사를 실시했다. 변화된 트렌드에 맞게 투자금융 및 기업금융을 특기로 분류할 수 있는 인물도 부행장에 올랐다. 신한은행이 지역 본부 업무와 기관 영업에 전문성을 보유한 김광수 부행장을 고객솔루션그룹장으로 발탁한 것이 대표적이다.
준법과 내부통제 부문에서 전문성을 쌓은 승진자는 4명이다. 최근 잇단 대형 금융 사고로 은행 내부통제 강화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가운데 금융 당국이 은행 경영 실태 평가에서 ‘내부통제’ 부문을 별도 평가 부문으로 분리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홍보 전문가가 2명이나 승진한 점도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최근 은행권에 쏟아지는 비판 여론을 전환하기 위해 대외 소통 창구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시중은행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은행의 꽃으로도 불리는 부행장은 실질적인 사업을 담당하는 집행 임원”이라며 “부행장급 인사를 보면 최근 은행 경영 기조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고 했다.
출신 학교는 총 22개교로 고르게 퍼진 가운데 지방대가 약진했다. 36명 중 15명(41%)이 지방대를 졸업했다. 서울권에서는 고려대와 한양대·서강대가 3명씩을 배출했고 경희대와 중앙대가 각각 2명으로 뒤를 이었다. 서울대는 1명뿐이었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은행 업권을 주름잡았던 ‘명문 상고’ 출신들은 1명도 없었다. 교육 체계가 바뀌고 시대가 변하면서 상고 출신 인재풀이 크게 줄어 ‘상고 전성시대’가 저물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출신 학교와 전공을 보지 않고 업무 실적이 뛰어난 실무 전문가를 등용하는 게 최근의 분위기”라고 전했다.
여성 임원 승진자는 2명에 불과해 여전히 유리 천장이 존재함을 보여줬다. 이번 승진자 36명 중 여성은 2명에 그쳤다. 국민은행에서 개인마케팅본부를 이끌던 곽산업 전무가 디지털사업그룹 부행장으로 승진했고 우리은행의 정현옥 투자상품전략그룹장이 금융소비자보호그룹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부행장에 올랐다. 과거 성별에 따라 직급 체계가 달랐던 시기에 입사한 직원들이 현재 고위직에 오르면서 성비가 불균형을 이룬다는 설명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여성 인재풀이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앞으로 5~10년 내에는 유리 천장 이야기가 사라질 정도로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