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주거비에 反이민 정서도 뇌관

[신년기획]결단의 해 막오른 경제전쟁 <3> 기업천국 아일랜드-경제 위협 복병은
우크라이나 난민 10만여명 수용
반이민 폭동·시위에 치안 불안
구글·애플 등 글로벌기업 몰려
더블린 투룸 월세 290만원 달해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 리피강의 야경. 사진=이준형 기자

지난해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 상점가가 밀집된 번화가 오코넬 거리 등 도시 곳곳에 가르다(Garda·아일랜드 경찰)가 배치돼 있었다. 특히 번화가에서는 무장한 가르다 순찰차도 종종 눈에 띄었다. 통상 번화가에 인파가 몰리는 연말에도 이 정도 규모의 가르다 배치는 이례적이라는 것이 아일랜드 시민들의 전언이다.




이처럼 더블린 치안이 대폭 강화된 것은 지난해 11월 발생한 ‘반(反)이민 폭동’ 때문이다. 50대 남성의 흉기 난동으로 5세 여아 등 5명이 다친 사건이 도화선이 됐다. 용의자가 이민자라는 소문이 돌자 수백 명의 시위대가 반이민 구호를 외치며 버스와 트램에 불을 지르고 백화점을 습격했다. 지난해 12월 오코넬 거리에서도 깨진 유리창을 보수하고 있는 상점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반이민 정서의 배경은 복합적이다. 가장 최근 이민 문제가 불거진 것은 우크라이나 난민이 몰려온 후다. 인구가 510만 명이 조금 넘는 아일랜드가 수용한 우크라이나 난민은 약 10만 명에 달한다. 인구의 2%에 달하는 수준으로 인구 대비로 놓고 보면 유럽에서 가장 많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될 경우 최대 5만 명의 난민이 아일랜드에 추가 유입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아일랜드 정부는 주택난이 극심한 더블린에서 모든 우크라이나 난민에게 주거 지역은 물론 생활비도 지원했다.


아일랜드의 주택난도 이민자와 상주 외국인으로 인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법인세 세율이 12.5%로 고정된 2003년부터 더블린에 구글, 애플, 메타(옛 페이스북) 등 글로벌 기업이 몰리며 고연봉 직원도 덩달아 늘기 시작했다. 이에 더블린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원주민들이 교외로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더블린 현지 글로벌 테크 기업에서 일하는 스페인 출신의 카밀라(가명) 씨는 “더블린에서 투룸 집을 구하려면 월세를 2000유로(약 290만 원)는 줘야 한다”며 “공급보다 수요가 많아 임차인의 직장은 물론 신용도, 정규직 여부 등을 까다롭게 따지는 집주인이 많다”고 토로했다.


오른 것은 집값만이 아니다. 아일랜드도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유럽을 강타한 인플레이션 여파를 피하지 못했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아일랜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13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딱지를 뗀 후 0%대에 머물다가 2021년 2.4%, 2022년 7.8%로 치솟았다. 더블린에 위치한 메타 유럽본부에서 일하는 한 외국인 직원은 “현재 연봉 수준이 아니면 더블린에서 살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결혼해 가정이 생기면 고향으로 돌아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기업이 아일랜드에 몰려도 정작 현지인 고용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해당 기업이 대부분 기존 본부의 직원을 데려오거나 비자 문제가 없는 유럽연합(EU) 내 다른 국가에서 직원을 채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카밀라 씨는 “회사 동료의 80~90%는 아일랜드인이 아니다”라며 “더블린에서 3년간 일했지만 아일랜드인 동료와 일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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