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법인세 혁명'…성공 비밀은 EU·법인세·젊은 피

[신년기획-결단의 해, 막 오른 경제전쟁]
<3>기업천국 아일랜드-유럽의 실리콘밸리
파격적 법인세로 테크기업 본부 집결
다국적기업 수출액만 年 450조
1인당 GDP 20년간 3배 이상 뛰어
外資 의존도 높은 점은 아킬레스건
미래기금 등 경제 방파제 쌓기 나서

리오 버라드커 아일랜드 총리가 지난해 12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담을 앞두고 현지 언론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AP연합뉴스

“법인세 경쟁력이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이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율리아 지드슐락 아일랜드 경제사회연구소(ESRI) 연구교수 겸 트리니티칼리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12월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ESRI는 1960년에 설립된 아일랜드의 대표 싱크탱크다. 지드슐락 교수는 “아일랜드는 지난 20년간 법인세 세율을 12.5%로 유지했다”며 “정책의 일관성은 아일랜드가 매력적인 투자처로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말했다.


실제 아일랜드에 몰려든 글로벌 기업이 1800개(아일랜드 산업개발청(IDA) 2023년 1분기 기준)를 돌파했다. ‘친기업 정책을 통한 경기부양’이라는 노사정의 공감대 속에 2000년대 들어 ‘법인세 혁명’을 단행한 결과다. 아일랜드에 자리 잡은 다국적기업의 연간 수출액만도 450조 원이 넘는다. 미국 기업이 950개로 전체의 52.7%를 차지했으며 이어 영국(179개), 독일(103개), 프랑스(80개) 등의 순이다. 이들 기업의 고용 창출 효과는 30만 명이 넘는다. 아일랜드 전체 경제활동인구(약 260만 명)의 11%에 달한다.


글로벌 기업이 몰린 것은 법인세 영향이 크다. 아일랜드는 2003년 법인세 세율을 세계 최저 수준인 12.5%로 낮춘 뒤 지난해까지 20년간 같은 세율을 유지해왔다. 올해 최저한세 적용으로 인해 법인세율이 15%로 올라도 유로존 평균보다 6%포인트 낮아 경쟁력은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20년 전만 해도 작은 사무소로 출발한 구글 더블린 지사가 1000명 규모의 개발자가 일하는 유럽 본부로 발전한 것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켄 화이트로 IDA 신흥시장 총괄은 “구글은 지난 20년간 아일랜드에 상당한 투자를 했다”며 “최근 5년간 투자액만 15억 유로(약 2조 1000억 원)”라고 말했다.


‘EU 실리콘밸리’ 부상

120m.


지난달 찾은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의 번화가 오코넬 거리 중심부에 세워진 ‘더블린 스파이어(첨탑)’의 높이다.


아일랜드 정부는 2003년 자국의 경제 성장세를 기념해 더블린 스파이어를 세웠다. 당시 아일랜드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4만 940달러로 10년 전인 1993년(1만 4260달러)보다 3배 가까이 급증했다. 마침 2003년은 아일랜드의 1인당 GDP가 식민지 종주국인 영국을 넘어선 해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첨탑이 세워진 곳은 영국의 국민 영웅 호레이쇼 넬슨 제독의 동상이 있던 자리다.


국가적 자존심이 투영된 더블린 스파이어는 아일랜드가 쓴 ‘경제 드라마’의 새 변곡점이 됐다. 당초 아일랜드 정부가 이 첨탑을 세운 것도 다가올 100년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아일랜드의 1인당 GDP는 2003년 4만 940달러에서 지난해 11만 2250달러로 최근 20년간 3배 가까이 늘었다. 같은 기간 한국의 1인당 GDP는 1만 4670달러에서 3만 3150달러로 2배가량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절댓값만 놓고 봐도 아일랜드의 1인당 GDP는 한국의 3배가 넘는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재정 위기 당시인 2011년만 해도 ‘유럽의 병자’로 꼽힐 만큼 부침이 심했던 아일랜드의 극적 성장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아일랜드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는 첫손에 파격적 법인세가 꼽힌다. 아일랜드는 지난해까지 최근 20년간 법인세 세율을 유로존 최저 수준인 12.5%로 유지하고 있다. 실제 더블린은 2003년 구글 유치를 기점으로 메타(옛 페이스북), 아마존, X(옛 트위터), 세일즈포스 등 미국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테크 기업의 유럽 전초 기지로 자리매김했다. 이들 기업이 몰린 더블린 그랜드 캐널독 지구는 ‘유럽의 실리콘밸리’로 명성이 높다.


아일랜드의 젊은 노동력도 글로벌 기업을 끌어당기는 또 다른 원인이다. 한국과 달리 아일랜드 인구는 매년 증가세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아일랜드 인구는 2012년 460만 명에서 2022년 513만 명으로 최근 10년 새 11.5% 늘었다. 같은 기간 한국 인구 증가율(2.9%)의 4배에 달한다. 지난해 아일랜드 경제활동인구가 역대 최고치인 260만 명대를 기록한 것도 이런 인구 증가세 덕분이다. 2017년 한국에서 아일랜드로 이주한 박수진(가명) 씨는 “아일랜드 정부는 출산 장려 정책에도 적극적”이라며 “주변을 보면 가구당 2~3명의 아이를 낳는 게 일반적”이라고 전했다.




교육 수준도 EU에서 높다. 아일랜드 25~34세 인구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이들이 차지한 비중은 62.3%(2022년 기준)로 유럽연합(EU) 평균치(42%)를 20%포인트 이상 웃돈다. 20대 이공계 전공자 비율도 36.9%로 EU 최상위권이다. 아일랜드 정부가 대학 무상교육 등 고등교육 정책을 1960년대부터 꾸준히 강화한 결과다.


노동생산성 역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높다. 아일랜드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2022년 기준 155.5달러로 한국(49.4달러)의 3배가 넘는다. 독일(88.0달러), 미국(87.6달러) 등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도 2배 가까이 높다. 율리아 지드슐락 아일랜드 경제사회연구소(ESRI) 연구교수는 “아일랜드의 인구 구성은 EU 27개국 중 가장 젊은 편”이라며 “고숙련 노동력과 직결된 높은 수준의 고등교육 비율을 유지하는 것은 아일랜드 인구 정책의 핵심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심지어 아일랜드는 EU 내 유일한 영어권 국가다. 특히 19세기 중반 대기근으로 수백만 명의 아일랜드인이 미국으로 이주하며 아일랜드계 미국인이 적지 않은 점은 양국의 심리적 거리감을 좁히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계 기업이 EU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베이스캠프’로 아일랜드를 선택하기에 적합하다는 의미다. 실제 아일랜드에 둥지를 튼 글로벌 기업의 절반 이상은 미국계다.


아일랜드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Brexit) 반사 이익을 누렸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약 700년의 식민 지배 역사로 문화·규제 등 여러 분야에서 영국과 아일랜드 간 유사점이 많기 때문이다. 이미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 이후 메릴린치·바클레이스 등 굵직한 금융기관이 잇따라 유럽 거점을 런던에서 더블린으로 옮겼다.


전문가들이 올해 법인세 인상으로 아일랜드가 입을 타격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는 배경에도 이런 복합적인 맥락이 자리한다. 올해부터 주요국 다국적 기업에 최소 15%의 법인세를 매기는 글로벌 최저한세가 시행돼 아일랜드의 법인세 세율 역시 기존 12.5%에서 15%로 2.5%포인트 올랐다. 단 해당 세율은 연간 매출이 7억 5000만 유로(약 1조 원)가 넘는 기업에만 적용된다.


법인세 인상에도 다국적 기업의 엑소더스 등 자본 유출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당장 수천 명의 직원을 고용한 유럽 본부를 다른 국가로 이전하기 쉽지 않은 데다 이번 인상에도 아일랜드의 법인세율(15%)은 여전히 유로존 평균치보다 6%포인트 이상 낮다. 지드슐락 교수는 “법인세 인상으로 외국인직접투자(FDI)가 다소 위축될 수 있지만 아일랜드의 장점이 많아 충분히 극복 가능한 수준일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기금으로 ‘우천’ 대비

아일랜드 정부가 올해부터 1000억 유로(약 144조 원) 규모의 ‘미래 기금(Future Fund)’을 조성한다.


미래 기금의 핵심은 2035년까지 매년 아일랜드 국내총생산(GDP)의 0.8%에 달하는 돈을 기금에 투입하는 것이다. 아일랜드 재무부는 연평균 투자 수익률을 약 4%로 가정하면 기금 규모가 1000억 유로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 더블린에서 만난 율리아 지드슐락 아일랜드 경제사회연구소(ESRI) 연구교수는 미래 기금을 우천 기금(Rainy day Fund)에 빗댔다. 최근 경기 호황에도 아일랜드 정부가 향후 경제가 나빠지는 이른바 ‘경제적 우천’에 준비하는 차원의 기금이라는 것이다. 지드슐락 교수는 “최근 특정 산업군에서 유독 많은 법인세가 걷혔다”며 “(아일랜드) 정부가 이 같은 구조의 세수 호황은 지속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해 경기 침체에 대비한 기금을 미리 마련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얼핏 보면 아일랜드의 우려가 과도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당장 지난해 법인 세수만 해도 220억 유로(11월 누적 기준)로 글로벌 경기 침체 속에서도 전년 대비 4.2% 늘었기 때문이다. 팬데믹으로 글로벌 경기 침체가 닥쳤던 2020~2022년에도 아일랜드의 GDP는 연평균 10.4%(IMF 기준)씩 성장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GDP 성장률이 2022년 기준 3%대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독보적인 성장세로 볼 수 있다. 경기 호황에 힘입어 지난해 재정 흑자는 100억 유로(약 14조 4000억 원)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의 지난해 세수 결손 규모가 59조 1000억 원으로 예상된 것과는 확연히 대조된다.




그럼에도 아일랜드가 미래 기금을 조성하는 것은 외국 자본 의존도가 높다는 점 때문이다. 최근 세수 호황 역시 아일랜드에 둥지를 툰 외국계 기업의 영향이 크다.


아일랜드에서 매년 소득세 다음으로 많이 걷히는 법인세만 놓고 봐도 글로벌 기업에 대한 의존도를 확인할 수 있다. ESRI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아일랜드 법인세의 86.5%는 외국계 기업에서 걷혔다. 또 같은 해 법인세의 약 55%는 구글 등 매출액 기준 상위 10대 기업이 냈는데 이들 기업 역시 모두 외국계였다. 다국적 기업의 실적에 따른 세수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아일랜드 법인세는 지난해 8월부터 10월까지 3개월 연속 감소하다가 11월에야 반등했다. 아일랜드에 유럽 본부를 둔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과 제약사의 매출 변동에 따라 세수도 요동친 것이다. 마이클 맥그라스 아일랜드 재무부 장관은 “지난해 법인세 수입은 1년 전보다 4%가량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실적 과잉의 시대가 끝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짚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아일랜드가 ‘우천’을 대비하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러시아발(發) 가스 공급 중단 사태로 유럽이 에너지 위기를 겪는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자 아일랜드가 자국 내 외국 자본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영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북미유럽팀 부연구위원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에서는 자국 내 외국 자본을 경제적 논리만이 아닌 지정학적 논리로 보려는 경향이 강해졌다”며 “아일랜드도 현 경제 구조의 지속 가능성을 재검토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 주는 시사점도 적지 않다. 한국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의 세일즈 외교를 필두로 외국인직접투자(FDI) 유치액을 늘리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이에 지난해 FDI 신고액은 전년 대비 7.5% 증가한 327억 2000만 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장 위원은 “아일랜드의 FDI 유치 전략 중 하나는 외국 기업이 수도 등 특정 지역에 몰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며 “한국도 지방 소멸 위기가 커지고 있는 만큼 낙후 지역에 투자하는 외국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세금·비자 등 해외기업에 원스톱 서비스"

“우리는 전 세계 22곳에 해외 지사를 두고 있습니다. 아일랜드에 투자를 고려하는 기업 관계자가 현지 답사를 위해 짐을 쌀 때부터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목표입니다.”


외국인직접투자(FDI) 유치 전담 기관인 아일랜드 산업개발청(IDA)의 켄 화이트로 신흥시장 총괄은 지난달 아일랜드 더블린에 위치한 IDA 본부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이같이 말했다. 화이트로 총괄은 “해외 기업의 의사 결정자가 아일랜드를 방문할 때 세금·비자·생활비 등 모든 측면에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며 “글로벌 기업의 아일랜드 주재원에게 출퇴근이 편한 지역은 물론 자녀 학교를 위한 컨설팅도 제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국적 기업 직원을 위한 세제 혜택도 언급했다. 글로벌 기업의 아일랜드 주재원에 한해 소득의 30%까지 소득세를 감면해주는 ‘특별 지정인 인센티브 프로그램(SARP)’이 대표적이다. 화이트로 총괄은 “(해외 기업) 세무 컨설팅을 위해 내부에 세금 전문가도 상주한다”며 “IDA는 기본적으로 고객사가 원하는 모든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해 관련 기관과 전문가를 연결해준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켄 화이트로 아일랜드 산업개발청(IDA) 신흥시장 총괄. 사진 제공=아일랜드 산업개발청(IDA)

아일랜드에 투자한 기업과의 관계 유지도 강조했다. 특히 화이트로 총괄은 IDA와 고객사의 관계에 대해 “진정한 동반자 관계(true partnership)”라고 말했다. 그는 “IDA는 고객사가 아일랜드에 투자를 결정하기 전부터 맞춤 정보를 제공하고 인허가 업무를 지원하는 등 긴밀히 협력한다”며 “이런 유대 관계에 기반해 이미 아일랜드에 투자한 글로벌 기업과도 20~30년간 꾸준히 협력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IDA의 다음 타깃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기업이다. 특히 최근 눈에 띄는 성과는 아일랜드가 전통적으로 강했던 바이오 분야다. 일본 아스텔라스 제약은 지난해 9월 아일랜드에 3억 3500만 유로(약 4800억 원)를 투입해 생산기지를 짓는다고 발표했다. 중국 최대 바이오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 우시바이오로직스는 최근 아일랜드에만 2개의 생산기지를 구축했다. 화이트로 총괄은 “전통적으로 강한 분야가 있지만 특정 산업군에만 집중하는 것은 회의적”이라며 “아일랜드가 제약·전자·e커머스·신재생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에 있는 아태 기업의 유럽 전초기지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反이민 정서는 뇌관

지난해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 상점가가 밀집된 번화가 오코넬 거리 등 도시 곳곳에 가르다(Garda·아일랜드 경찰)가 배치돼 있었다. 특히 번화가에서는 무장한 가르다 순찰차도 종종 눈에 띄었다. 통상 번화가에 인파가 몰리는 연말에도 이 정도 규모의 가르다 배치는 이례적이라는 것이 아일랜드 시민들의 전언이다.


이처럼 더블린 치안이 대폭 강화된 것은 지난해 11월 발생한 ‘반(反)이민 폭동’ 때문이다. 50대 남성의 흉기 난동으로 5세 여아 등 5명이 다친 사건이 도화선이 됐다. 용의자가 이민자라는 소문이 돌자 수백 명의 시위대가 반이민 구호를 외치며 버스와 트램에 불을 지르고 백화점을 습격했다. 지난해 12월 오코넬 거리에서도 깨진 유리창을 보수하고 있는 상점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반이민 정서의 배경은 복합적이다. 가장 최근 이민 문제가 불거진 것은 우크라이나 난민이 몰려온 후다. 인구가 510만 명이 조금 넘는 아일랜드가 수용한 우크라이나 난민은 약 10만 명에 달한다. 인구의 2%에 달하는 수준으로 인구 대비로 놓고 보면 유럽에서 가장 많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될 경우 최대 5만 명의 난민이 아일랜드에 추가 유입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아일랜드 정부는 주택난이 극심한 더블린에서 모든 우크라이나 난민에게 주거 지역은 물론 생활비도 지원했다.



아일랜드 더블린 국제금융센터(IFSC) 인근에 위치한 글로벌 보험사 AIG. 글로벌 기업이 대거 더블린에 자리잡으면서 주거비도 크게 뛰고 있다. 사진=이준형 기자

아일랜드의 주택난도 이민자와 상주 외국인으로 인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법인세 세율이 12.5%로 고정된 2003년부터 더블린에 구글, 애플, 메타(옛 페이스북) 등 글로벌 기업이 몰리며 고연봉 직원도 덩달아 늘기 시작했다. 이에 더블린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원주민들이 교외로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더블린 현지 글로벌 테크 기업에서 일하는 스페인 출신의 카밀라(가명) 씨는 “더블린에서 투룸 집을 구하려면 월세를 2000유로(약 290만 원)는 줘야 한다”며 “공급보다 수요가 많아 임차인의 직장은 물론 신용도, 정규직 여부 등을 까다롭게 따지는 집주인이 많다”고 토로했다.


오른 것은 집값만이 아니다. 아일랜드도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유럽을 강타한 인플레이션 여파를 피하지 못했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아일랜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13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딱지를 뗀 후 0%대에 머물다가 2021년 2.4%, 2022년 7.8%로 치솟았다. 더블린에 위치한 메타 유럽본부에서 일하는 한 외국인 직원은 “현재 연봉 수준이 아니면 더블린에서 살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결혼해 가정이 생기면 고향으로 돌아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기업이 아일랜드에 몰려도 정작 현지인 고용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해당 기업이 대부분 기존 본부의 직원을 데려오거나 비자 문제가 없는 유럽연합(EU) 내 다른 국가에서 직원을 채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카밀라 씨는 “회사 동료의 80~90%는 아일랜드인이 아니다”라며 “더블린에서 3년간 일했지만 아일랜드인 동료와 일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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