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그룹이 그동안 배제했던 SBS 지분과 티와이홀딩스 지분도 필요시 담보로 내놓기로 하면서 도급 순위 16위인 태영건설의 워크아웃(기업 개선 작업)이 무산되는 최악의 사태는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추가 자구안을 받은 채권단의 분위기가 빠르게 누그러진 데 더해 금융 당국도 ‘지주사 연대보증 채무 유예’라는 당근책을 통해 태영건설 정상화 방안을 강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다만 워크아웃이 개시되더라도 자구 계획이 지켜지지 못하거나 추가 자구안 규모를 두고 이견이 커지면 절차가 중단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윤세영 태영그룹 창업회장은 9일 필요시 티와이홀딩스·SBS 지분을 담보로 추가 유동성을 확보하겠다고 밝힌 데 더해 “에코비트 등 주요 계열사 매각 또는 담보 제공 등 나머지 자구 계획도 충실히 이행하겠다”며 윤석민 회장과 함께 채권단에 이 같은 내용을 확약했다고 전했다. 앞서 금융 당국은 이사회 결의 등을 통해 자구안 계획을 제대로 이행하겠다는 확약을 추가로 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태영건설이 기존에 제출한 ‘네 가지 자구안’은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자금 1549억 원의 태영건설 지원 △에코비트 매각 추진 및 대금 지원 △블루원 지분 담보 제공 및 매각 추진 △평택싸이로 지분 담보 제공 등이다. 태영그룹은 기존 네 가지 자구안만으로 일단 4월까지는 유동성 문제가 해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금락 태영그룹 부회장은 “에코비트의 담보가액이 1조 5000억 원인데 실제 매각된다면 그보다 훨씬 큰 금액으로 예상된다”면서 “따라서 자구안만으로도 충분히 유동성이 해소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태영그룹은 최근 에코비트 매각과 관련해 글로벌 사모펀드인 KKR과 공동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기존 자구안만으로도 자금이 부족할 경우 태영 측은 티와이홀딩스와 SBS 지분을 활용해 친인척이 아닌 금융기관을 통해 유동성을 확보하겠다고도 밝혔다.
태영그룹의 추가 자구안에 정부와 채권단의 분위기는 빠르게 누그러졌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나 “(채권단이) 일제히 보증 채무를 청구해 해당 기업의 유동성을 어렵게 만드는 건 워크아웃 정신에 맞지 않는다”면서 “보증 채무는 본채무에 연결된 부속적 채무인 만큼 최소한 그 정도(본채무 유예) 기간에는 (유예를) 함께 고려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워크아웃 개시 시 지주사의 연대보증 채무를 유예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시사했다.
금융 당국의 분위기가 바뀐 것은 ‘교통정리’를 하지 않으면 워크아웃이 개시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개시를 위해 수백 곳에 달하는 채권단 75%를 단기간에 설득하는 것도 어려운데 채권단 내에서는 태영그룹이 기존에 제출한 네 가지 자구안을 제대로 이행했는지를 두고서도 의견 차가 좁혀지지 않았었다. 이로 인해 이 원장은 지난 주말께 윤 창업회장을 직접 만나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다만 개별 채권금융회사들은 아직까지 ‘반신반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 주요 채권금융회사 관계자는 이날 발표된 추가 자구안을 두고 “‘남의 뼈’를 깎는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자기 뼈’를 깎는 자구안인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주요 채권금융회사의 한 관계자도 “기자회견에서 티와이홀딩스와 SBS 지분 매각 조건에 ‘필요시’를 단 것 자체가 아직 오너 일가의 손익을 우선시하는 것처럼 보인다”며 “태영건설이 벌여둔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 규모도 현황 파악이 쉽지 않은 만큼 태영 측의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오너 일가의 추가 사재 출연이 없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사재 출연과 관련해 최 부회장은 “(앞서 태영건설에 지급한)1549억 원에 윤 회장의 416억 원이 포함돼 있다”며 “윤 회장이 출연하면서 원금과 이자를 모두 받지 않겠다고 문서로 약속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필요시 담보로 잡게 될) SBS와 지주사 주식을 사재 출연의 일환으로 봐달라”고 덧붙였다.
한편 제1차 금융채권자협의회를 통해 워크아웃이 개시되더라도 이후 진행 과정에서 절차가 중단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이와 관련해 산업은행 측은 “워크아웃 개시가 가결되더라도 사주와 태영그룹이 약속한 자구안 중 단 하나라도 지키지 않는다면, 또 실사 과정에서 대규모 추가 부실이 발견된다면 워크아웃 절차는 중단될 것”이라며 “태영 측은 이 점을 깊이 고려해 태영건설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책임이행 방안을 신속하게 추진해 협력업체, 수분양자, 채권자 등 이해관계자의 피해와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달라"고 덧붙였다. 채권단이 공동관리 절차 과정에서 SBS·티와이홀딩스 지분을 추가 담보로 요구할 수 있다는 점도 ‘불씨’다. 산은은 10일 이와 관련해 주요 채권단 회의를 재소집하고 채권단 의견 수렴 및 설득 작업을 이어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