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통의 편지, 하나의 전시를 보여주기 위한 작가와 기획자의 소통

페리지 팀 프로젝트 2023 '신시얼리'
기획자·작가 각 1명씩 선발해 전시 준비
1년간 40통의 편지 주고 받으며 소통한 흔적 설치

미술 전시회가 열리기 전 기획자와 미술 작가는 머리를 맞대고 오랜 시간 고민을 한다. 관람자들은 기획자와 작가가 전시를 위해 얼마나 치열한 시간을 보내는지 알기 힘들다. 최종 결과물인 전시를 보고 그들을 평가할 뿐이다. 기획자와 작가는 작품을 매개로 ‘일로 만난’ 사이이기는 하지만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작가와 기획자는 전시회에 선보일 작품을 함께 사랑해야 하고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최선의, 최상의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


전시 기획자와 작가가 전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겪는 치열한 고민을 그대로 보여주는 전시가 열린다. 서울 서초구 페리지 갤러리에서 열리는 '페리지 팀 프로젝트 2023 신시얼리(sincerely)’다. 페리지 팀 프로젝트는 매해 역량 있는 젊은 작가와 기획자를 한 명씩 선발해 하나의 팀을 만들고, 이들이 협업해 하나의 전시를 만들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페리지갤러리는 지난 2022년 10월 공모를 시작해 11월 고성 작가와 홍예지 기획자를 최종 선발했고, 두 사람은 1년간 전시를 기획했다.


고성은 사진으로 임시적인 삶, 실체와 기억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작가다. 페리지 팀 프로젝트와 SKOPF 올해의 작가 3인(2018년) 등에 선정됐다. 아르헨티나 국립미술관, 필라델피아 미술관 등에 작품이 영구 소장돼 있는 젊은 작가다. 홍예지는 서울대 경영학과, 미학과를 졸업해 다양한 전시를 기획하고, 미술평론집 ‘사랑을 볼 수 있다면’ 등을 저술한 기획자다.


전시 기획이 그저 작가에게 작품을 받아 기획자가 전시장에 아름답게 배치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아름답게 배치하기 위해서는 기획자의 연구가 필요하다. 작가가 작품을 제작한 의도와 생각, 작가의 삶을 대하는 태도 전반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페리지 팀 프로젝트 '신시얼리' 전시 전경. 사진 제공= 페리지갤러리

페리지 팀 프로젝트, 설치 전경. 사진 제공=페리지 갤러리



두 사람은 지난 1년간 서로 편지를 주고 받으며 삶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고성 작가는 “서로 모르는 상태에서 프로젝트에 뽑혔는데 서로 알아가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며 “당시 각자의 자리에서 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편지를 주고 받으며 소통을 했고, 기획자에게 인상깊었던 글이 무엇인지 물어봤는데 릴케의 글을 인용한 문구가 마음에 와 닿았다”고 말했다.


작은 전시장은 기획자의 서재와 작가의 작업실, 그리고 공동 교류 공간으로 구분돼 있는데 전시장 한 가운데 소파가 놓여 있다. 전시장에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인간의 문화와 삶의 흔적이 담긴 책과 사물이 여기저기에 배치돼 있는데 소파에 앉아 이 모든 것들을 둘러볼 수 있다. 관람객들은 연극이 시작되기 전 텅 빈 무대를 바라보는 것처럼 두 사람의 소통을 경험할 수 있다.



페리지 팀 프로젝트 '신시얼리' 전시 서간집. 사진= 서지혜 기자


두 사람이 1년간 나눈 40여 통의 편지는 서간집으로도 제작됐다. 편지를 모은 책이 이번 전시의 도록인 셈이


다. 도록은 이번 전시의 뼈대이기도 하다. 고성 작가는 “둘 만의 연결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며 “기획자와 작가의 공간, 서로의 편지 안에서 발생한 공통 키워드를 가운데 상징물로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홍 기획자는 “서간집을 먼저 읽어보고 우리가 어떤 의미로 전시장을 이렇게 꾸몄는지 추측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매주 전시장에서는 편지 낭독 퍼포먼스와 관객과의 대화 등 짧은 퍼포먼스가 열릴 예정이다. 두 사람의 편지는 전시 중에도 계속 업데이트 된다. 홍 기획자는 “서간집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서로 대화를 나누다 답이 안 된 부분이 있다”며 “그런 빈 공간을 잡아 확대시켜 함께 이야기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5일부터 2월 3일까지 열린다. 작가·기획자와 함께 하는 퍼포먼스는 11일과 27일 오후 2시, 18일과 2월 3일 오전 11시에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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