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다’는 말이 있다. 흔히 시장 비관론자들을 조롱하는 의미로 쓰인다. 하지만 살아 있는 유기체라는 경제 특성상 정확한 예측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기상학자와 경제학자는 둘 다 미래 전망으로 먹고 살지만 예측에 자주 실패한다. 차이점은 기상학자는 현재 날씨는 아는데 경제학자는 지금 경제 상황도 모를 때가 많다는 것”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역설적으로 비관론자들이 누리는 장점도 있다. 대다수 낙관론자 사이에서 ‘고장난 시계’처럼 ‘다중 위기’ ‘퍼펙트 스톰(초대형 복합 위기)’ 등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한두 번은 전망이 맞기 마련이다. 그 순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견했던 ‘닥터 둠’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처럼 일약 스타가 될 수 있다. 언론도 걸핏하면 ‘위기설’ 기사를 쏟아낸다. 자극적이어서 독자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고 사전 경고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다는 자기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유로존(유로화 사용국)의 재정위기,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에 따른 ‘긴축 발작’, 중국 증시의 거품 붕괴, 미중 무역 전쟁, 팬데믹 사태 등 위기가 2~3년 간격으로 반복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세계화와 맞닥뜨리게 된다. 미중 전략 경쟁과 글로벌 공급망 위기가 대표적이다.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 이후 미국과 중국은 30여 년 동안 상호 비교우위를 바탕으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미국은 중국에 고비용 제조업 생산 기지를 이전하는 대신 첨단 산업 육성에 주력했다. 중국은 해외 자본 유치에 힘입어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도약했다. 하지만 제조업 공동화에 따른 미국의 정치·경제적인 부담이 커지고 중국이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산업 고도화를 시도하면서 밀월 관계는 깨졌다. 코로나19 사태, 10년 주기의 글로벌 금융위기도 세계화의 결과물이다. 세계가 하나로 묶이면서 국지적인 위기가 주변으로 전염되고 대형화하고 있는 것이다.
위기가 또 다른 위기의 씨앗이 된다는 점도 이전과는 다른 양상이다. 지금 세계경제가 장기 저성장 위기에 빠진 것은 코로나19 위기 극복 과정에서 돈을 많이 풀다 보니 물가가 상승하면서 과거와는 정반대로 고금리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세계화 위기는 위기 극복을 위한 정치적 리더십마저 고갈시키고 있다. 중산층 붕괴, 소득·자산 양극화 등 세계화의 부작용이 커지면서 기존 정치권과 주류 엘리트에 대한 반발과 적대감, 진영 간의 대립이 극에 이른 탓이다. 세계화 위기는 여러 위기의 원인이자 결과물인 셈이다.
앞으로 닥칠 초거대 위협으로는 기후 재앙, 중국의 대만해협 봉쇄, 고금리 장기화와 막대한 부채,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인공지능(AI)과 같은 기술 발달 등이 거론된다. 하지만 위기란 항상 언제 어떤 방식으로 닥칠지 모르는 미지의 영역이다. 코로나19라는 최악의 전염병이 100년 만에 지구촌을 급습할지 아무도 몰랐듯이 말이다. 다만 앞으로 위기의 강도와 빈도가 전례 없는 양상을 띨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또 탈세계화 바람이 더 거세지면 세계화 수혜를 받아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 달성한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명대사처럼 “겨울이 오고 있다.”
이 같은 ‘영구적 위기’의 시대에는 단기 성장보다는 위기를 맞아 일시 후퇴하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회복 탄력성(resilience)’이 한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게 된다. 한 나라 경제가 지속 성장하려면 건전 재정 등 거시 경제의 안정성, 창조적 파괴 능력을 갖춘 산업 생태계 등이 두루 필요하다. 더 절실한 것은 공정·정의·법치·신뢰 등 사회적 자본의 확충이다. 구성원들이 상호 불신하는 사회가 반복되는 위기를 극복하기는 어렵다. 이런데도 새해부터 일부 정치인들은 개인과 당의 이득을 위해 매일 싸움박질만 하면서 국민 간 증오와 대립만 부채질하고 사회 영속성을 위협하고 있다. 다가올 ‘겨울’을 대비할 능력이 없다면 위기 증폭만이라도 멈춰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