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 호텔 창문 너머의 '인생' 찍었죠"

폴 매카트니 전속 사진작가 김명중, '전망 없는 방' 첫 컨템퍼러리 사진전
폴 매카트니 월드투어 동행하며
혼자의 추억으로 찍은 기록 모아
때론 예쁜 풍경 때론 창문 앞 장벽
좋고 나쁜 삶 조각 쌓인게 인생인듯
영화로도 진솔한 얘기 풀어내고파
가능한 연내 크랭크인 하는게 목표

김명중 사진작가가 폴 매카트니의 월드투어에 동행하며 투숙한 호텔 방의 창문 밖 풍경을 촬영한 사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세계 각지의 최고급 호텔에서 하룻밤. 여행이었다면 이보다 더 만족스러울 수 없을 시간이겠지만 일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2008년부터 폴 매카트니의 전속 사진가로 일하며 그의 월드투어에 동행하게 된 김명중(MJ KIM) 작가도 뜻밖의 외로움과 공허감에 빠진 순간이 많았다고 한다. “화려한 호텔도 홀로 방안에 들어가면 왠지 외롭고, 할 일도 없고. 다음 날 일정을 생각하면 푹 자야 하는데 낯선 공간과 시차 탓에 잠도 안 오고… 멍한 상태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호텔 방 창문 너머를 바라보며 사진기 셔터를 누르는 일뿐이었죠.”


언젠가 혼자 들여다볼 추억이 되리라 생각하며 찍었던 기록들인데 시간을 쌓으니 하나의 흐름이 그려졌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계획은 없었지만 보여줘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125분의 1초라는 사진의 시간을 떠올려보니 여기 모인 사진의 시간은 모두 합쳐도 1분이 채 안 되더라고요. 그렇지만 스무여 장의 이 사진들을 선보이기까지 저는 15년을 꼬박 보냈죠. 어설픈 아이디어와 어설픈 사진일 수도 있겠지만 15년간 저만 보던 작업을 이렇게 공개하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요.” 서울 강남구 원앤제이갤러리에서 다음 달 8일까지 열리는 작가의 첫 컨템퍼러리 사진전 ‘전망 없는 방(Rooms without A View)’은 이렇게 대중을 만났다.




김 작가는 매카트니의 전속 작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졌다. 주로 영국과 미국에서 활동하며 마이클 잭슨,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 비욘세, 조니 뎁, 내털리 포트만, 방탄소년단(BTS) 등 세계적인 셀럽들과도 작업했다. 잘 연출된 인물 사진이 그의 주특기라고 할 법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사진들은 사뭇 다르다. 갤러리에서 만날 수 있는 20여 점의 사진들은 촬영 당시 시간과 공간의 감성을 고스란히 살리기 위해 디지털 보정과 편집을 최소화했다. 작품명도 눈에 띄는데 촬영한 날짜와 도시, 국가, 호텔 룸넘버를 차례로 나열해 시간과 장소를 거듭 강조했다.


작품마다 녹아 있는 김명중을 발견하는 것도 전시를 보는 또 다른 재미다. 일례로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영화 ‘전망 좋은 방’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전시 타이틀도 경험에서 우러났다. 그는 “폴 경과 월드투어를 하면 당연히 최고급 호텔에 머물게 되는데 룸키를 받아 방으로 향해 밖을 딱 내다보는 순간 실망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면서 “최고의 뷰는 내 몫이 아닌 게 당연한데 그럼에도 실망했던 기억이 떠올라 이름 붙였다”며 웃었다. 또 푸른 하늘이 가득한 브라질 호텔 창밖 풍경은 작업 탓에 방에만 머무르게 된 작가가 가구 위치라도 바꿔 보자며 책상을 창가로 옮겼다가 유리에 비친 아름다운 하늘에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카메라를 꺼내 찍은 사진이다.


“인물 사진을 찍을 때는 ‘선물’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는데, 이 사진 작업을 하면서는 ‘인생’이라는 단어를 많이 떠올렸어요. 내가 어떤 하늘을 찍고 싶다고 연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듯 인생이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창문을 열면 때로는 아름다운 바다가 펼쳐지지만 때로는 볼품없는 콘크리트 벽이 눈앞을 가로막기도 하죠.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전부 삶의 조각이고 그런 조각들을 쌓아가는 것이 인생 아닐까요.”



사진 제공=원앤제이 갤러리

작가의 다음 행보는 아마 영화가 될 것이다. 2020년 단편영화 ‘쥬시걸’을 통해 감독으로 데뷔한 작가는 최근 시나리오 작업을 끝냈다. 1980년대 ‘죽음을 연출한 사진가’로 불리며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이동식 살인 사건’을 주요 모티브로 해 새로운 스토리를 엮어낼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사진작가를 욕망하다 살인마가 돼 버린 범죄자의 내면을 탐구하는 이야기가 될 텐데 사진가인 내가 누구보다 잘 다룰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영화 산업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분위기에도 김 작가는 “운 좋게 제작을 위한 투자에 물꼬를 텄다”고 조심스레 말하며 가능한 한 올해 크랭크인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사진작가로 사는 게 감사하면서도 원래 사진작가가 꿈은 아니었기에 이게 끝은 아니라는 생각을 계속했어요. 사진은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혼자만의 사유를 완전히 풀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이 있지만 영화는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역량을 모두 쏟아부어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복잡한 매력이 있죠. 그럼에도 영화와 사진은 모두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매체라는 점에서는 또 같아요. 내 안의 가장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낼 때 타인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잊지 않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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