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스&] '단맛'에 취한 인류…'쓴맛'만 남은 진실

■설탕(윌버 보스마 지음, 책과함께 펴냄)
귀했던 설탕, 사탕수수 확산 불러
대서양 건넌 흑인 ⅔ 농장 노예로
오늘날에도 저임금·과노동 여전
재배 위해 숲태워…환경오염 가속
단맛 중독 비만·당뇨병 주범으로
달콤살벌한 '설탕의 역사' 담아내






현대 사회에서 설탕 없이 살 수 있을까. 커피 한 잔을 마실 때도, 과자나 케이크 하나를 먹을 때도, 코카콜라 같은 음료수 한 병에도 설탕은 상당한 양이 들어 있다. 오히려 설탕이 없는 식품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인간의 식생활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은 물질 가운데 설탕만큼 많이, 그리고 보편적으로 섭취하는 것도 흔치 않을 듯하다.


신간 ‘설탕’(원제 The world of sugar)는 이러한 달콤하지만 무서운 설탕의 역사와 인류의 운명을 다루는 이야기다. 설탕은 1500여년 전 남아시아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한다. 사탕수수 줄기를 짓이겨 즙을 내고 이를 끓인 뒤 식히면서 당밀을 제거하면 자당 결정체가 남는다. 이것이 설탕이다. 설탕과 설탕 제조술은 동서 양방향으로 전파돼 동북·남아시아로, 또 중동과 유럽으로 건너갔다. 15세기까지는 설탕을 만들기 어려웠고 그만큼 귀한 대접을 받았다.


이러한 균형은 신대륙이 발견되면서 깨진다. 아메리카 식민지에 거대한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농장이 건설되면서 설탕 생산은 급속도로 증가한다. 설탕의 대중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다만 이는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는 흑인 노예의 고통을 수반했다. 저자에 따르면 대서양을 건넌 1250만 명의 아프리카인 중에서 3분의 2가 이런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에서 혹사됐다고 한다. 설탕이 노예제도를 유지했다는 의미다. 또 생산된 사탕수수에서 설탕을 정제해 내기 위해서는 기계화가 필수적이었다. 압착기 등 정제시설의 규모가 클 수록 이익이 늘어나는 전형적인 자본주의화도 진행됐다.


이후 노예가 점차 부족해지자 이번에는 유럽의 가난한 지역민에 이어 중국인과 일본인, 심지어 한국인도 데려와 농장을 채웠다. 이러한 노예살이 계약 노동자의 삶의 조건은 노예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한국인의 첫 해외 이민의 시작은 1903년으로 기록돼 있는 데 이들의 일터가 하와이의 사탕수수 농장이었던 것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노예제가 불명예를 안고 퇴장한 이후에도 냉혹한 설탕 산업은 여전히 잘 가동됐다. 설탕은 이를 대량으로 독점 생산·유통한 이들에게 거대한 부를 가져다 줬지만 생산 노동자에는 고통만을 남겼다. 때로는 인종주의와 결합하고 또 부패 관료들을 양산했다. 저자는 “설탕은 모든 대륙에서 인간의 삶을 바꿔 놓았다. 산업화, 이주, 식생활의 변화를 통해 새로운 문화를 만들기도 하고 파괴하기도 했다”고 평가했다.


현대사회에도 설탕 산업과 관련된 문제가 적지 않다. 저개발국의 사탕수수 농장은 여전히 노동자들에게 위험한 환경과 저임금 노동을 부과하고 있다. 또한 사탕수수를 재배하기 위해 숲을 불태우고 수목들을 베어낸 결과 환경오염을 가속화하는 중이다.


설탕은 소비자에게도 악영향을 미친다. 누구나 알다시피 설탕 남용은 충치뿐만 아니라 비만과 당뇨병의 원인이다. 설탕 소비량이 많은 국가 중 하나인 인도의 당뇨병 환자는 2019년 기준 무려 7700만 명이다. 하지만 많은 소비자들은 이에 무덤덤하다. 오늘도 TV 등의 광고는 코카콜라 등 설탕을 포함 제품들로 채워진다. 일찍부터 설탕이 건강에 해롭다는 경고가 있어왔다. 하지만 거대 설탕 카르텔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설탕의 부정적인 면을 감추고 오히려 필수적인 에너지원이라면서 소비자를 현혹하고 있다. 3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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