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건물에서 각각 홀로 지내던 두 사람이 만나 함께 술을 마시고 바둑을 뒀는데, 다음 날 한 사람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검찰은 같이 바둑을 둔 60대 남성을 범인으로 보고 있지만, 이 남성은 살해 동기가 없다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제주에서 발생한 이른바 ‘바둑 살인 사건’이다.
지난해 7월 8일 밤, A씨와 B씨는 이날 처음 만나 식당에서 소주 3병을 나눠 마셨다. 이어 A씨의 주거지로 자리를 옮겨 술자리를 이어갔다. 또 이들은 술을 마시며 바둑도 두었다.
다음날 B씨는 A씨의 주거지 거실에서 가슴과 목 등 9곳이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쓰러져 있는 B씨를 발견한 A씨는 건물 2층에 있는 주인집에 올라가 직접 신고를 부탁했다.
검찰은 A씨가 자신의 주거지에서 B씨와 술을 마시며 바둑을 두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소리치며 B씨를 흉기로 여러 차례 찌른 것으로 보고 있다.
부검 결과 B씨는 가슴과 목 등 9곳을 찔린 상태였으며, 혈중알코올농도는 항거 불능 상태로 볼 수 있는 0.421%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제주지검은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된 A(69)씨에 대해 11일 제주지법 형사2부(재판장 진재경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결심 공판에서 A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하고 1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과 5년간 보호관찰 명령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은 "특별한 관계가 없는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나 벌어진 사건으로, 피해자가 사망해 진술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피고인은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상해치사와 여러 차례의 폭력 전과가 있음에도 알코올 관련이나 자신의 범행에 대해 진지한 반성을 하지 않아 엄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A씨 변호인은 최후변론에서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했다는 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했다.
A씨 변호인은 "피고인과 피해자는 사건 당일 처음 만나 화기애애하게 식사하고, 술을 마시고, 바둑을 뒀다"며 살해 동기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검찰은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는 해당 건물 거주자 진술을 근거로 범행 시각을 특정했으나 시간에 대한 진술이 정확하지 않으며, 제출된 CCTV 영상만으로는 건물 출입 사항을 명확히 확인할 수 없어 제3자 출입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A씨는 "지금도 너무 무섭다. 자고 일어났는데 사람이 죽어있었고, 무서워서 휴대전화를 찾다가 2층 집주인에게 가서 신고 좀 해달라고 했다"며 "제 결백보다도 같이 술을 마셨던 분이 돌아가셔서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