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칭더 당선자는 1959년 가난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탄광 폭발 사고로 2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아래서 육남매가 함께 컸다. 타이베이 젠궈고등학교를 거쳐 국립대만대 보건의학부 물리치료학과를 졸업했다. 국립대만대 출신 총통 계보는 이어가지만 천수이볜-마잉주-차이잉원으로 24년간 이어진 법학부 출신 총통 기록은 깨졌다.
타이난 국립성공대 의료학과를 거쳐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공공위생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종합병원 내과 의사로 활동하다가 1996년 국민대회 대표로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1998년에 치러진 입법위원 선거를 통해 타이난시 지역구 위원에 당선돼 4선을 했다.
이어 2010년 타이난 시장에 당선됐고 2014년에 재선에 성공했다. 2017년에는 린취안 행정원장(국무총리 격)이 사퇴한 뒤 후임으로 임명돼 타이난 시장을 사퇴하고 행정원장에 올랐다.
행정원장 시절에 스스로 "대만 독립을 위한 실질적인 일꾼"이라고 밝힐 정도로 반중 인식이 강한 친미·독립 성향으로 꼽힌다.
2019년 민진당 총통선거 후보 경선에 참여해 초반만 해도 치이잉원 당시 총통을 앞섰으나 그해 6월 홍콩 민주화 운동으로 정세가 불안해지면서 국정 안정론에 힘입어 차이 총통에 지지율이 역전당했다.
당시 라이 후보는 대만독립파를 지지 기반으로 해서 대만이 제2의 홍콩이 되지 않게 하겠다고 강경하게 맞섰으나 경선에서 차이 총통에 패배했다.
이후 차이 총통과 함께 부총통 후보로 나서 2020년 선거에서 부총통에 당선됐다.
2022년 11월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민진당이 대패하며 차이 총통이 당 주석을 사퇴하자 라이 당선자가 당시 선거에 출마해 지난해 1월 당선됐다.
이번 총통 선거에선 다른 후보가 등록하지 않아 자연스럽게 민진당 후보로 확정됐다. 초기부터 여론조사에서 1위를 줄곧 유지하다가 투표일을 열흘 앞두고 마지막으로 발표된 여론조사에선 국민당 허우유이 후보와 오차범위 이내까지 지지율 격차가 줄기도 했다.
라이 당선자는 지난해 부총통 시절 남미를 방문할 때 미국을 경유하며 "대만에 대한 권위주의의 위협이 아무리 크더라도 우리는 절대 두려워하거나 움츠러들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당시 중국은 이를 강력 비난하며 군용기와 군함을 동원해 타이완 주변에서 군사적 압박에 나서기도 했다.